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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년 “유민이가 그리워 미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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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년 “유민이가 그리워 미칠 것 같습니다”

입력
2018.04.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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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페이스북에 딸을 그리워하는 심경이 담긴 글을 올렸다. 희생자 304명을 그리는 가족들의 마음이 다르지 않겠지만, 오해가 낳은 비난 속에서 진실규명을 요구했던 그이기에 글이 더 절절하게 읽힌다.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4년 전 세월호 참사로 잃은 딸을 그리워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쳐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4년 전 세월호 참사로 잃은 딸을 그리워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쳐

김씨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일주일 앞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김씨는 “이혼하고 사업 실패로 쌓인 빚더미. 실패한 인생 가진 것 하나 없이 남은 몸뚱이 하나로 버티고 또 버티다가 유일하게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 딸 유민이”라고 글을 시작했다. “비정규직으로 공장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정신 없이 일하다가 ‘아빠’하고 불러주는 유민이 목소리를 들으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그는 밝혔다.

김씨는 46살에 첫 정규직 직장을 얻어, 빚을 갚고 딸 등록금도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을 때 “유민이가 ‘진짜야? 정말로 대학 갈 수 있는 거야’라며 기뻐했었다”고 딸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이 세상에 내 딸이 없었습니다. 이제 아빠가 뭔가 해줄 수 있었는데, 나는 유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는 “딸을 잃고 죄인이 됐다”고도 했다. 형편이 좀 나아지면서 2012년 취미로 한 달에 3만원을 들여 시작했던 국궁, 이혼한 아내에게 넉넉하지 못한 양육비를 보내면서 딸들에게 미안해 가슴 아파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욕으로 돌아왔다. 사고 후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46일간 벌였던 단식농성도 곧이곧대로 봐주질 않았다. 일부 극우 성향 네티즌은 그에 대해 “한 달에 200만원씩 들여 귀족 국궁을 하면서도 양육비 한 번 안 보내는 파렴치한이다. 보상금을 타내려고 단식 시위를 하고 있다”며 허위 사실을 퍼뜨렸고, 일부 인터넷 언론들은 이런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그는 “없이 살았지만 돈이 사람보다 중하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돈이 없어 나쁜 아빠가 된 나는 유민이를 그리워할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얘기합니다”라며 씁쓸한 심경을 밝혔다.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아빠라 불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민이가 그리워 미칠 것 같습니다.” 김씨의 글은 11일까지 1,000회 넘게 공유되면서 댓글이 900개 가량 달렸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다음은 김영오씨의 페이스북 글 전문.

이혼을 하고. 사업실패로 쌓인 빚더미...

먹고 사는 걸 걱정하는 것조차 사치이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공장에 나가고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하다 생각조차 할 겨를 없이 다시 잠이 들고...

허기를 느끼고 달랠 시간도 없이 그렇게 기계처럼 살았습니다.

실패한 인생 가진거 하나 없이 남은 몸뚱이 하나로 버티고 또 버티다가 유일하게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 딸 유민이...

비정규직으로 공장에서 일하면서 밤엔 치킨집 알바를 하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혼빠진 사람처럼 일만 하다가 ‘아빠’ 하고 불러주는 우리 유민이 목소리를 들으면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파산신청에 대해서도 권유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내 힘으로 빚을 갚는 모습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내 나이 46살 생에 첫 정규직...

이제 몇 년만 고생하면 빚을 갚고 우리 유민이 대학도 보낼 수 있겠구나 무언가를 꿈꿀 수 있었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빚만 갚으면 우리 유민이한테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12시간 2교대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날 이 세상에 내 딸이 없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깜깜한 터널을 걸어가던 내 인생에 유일한 빛이자 탈출구 였던 내 딸 유민이가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렸습니다.

이제 아빠가 뭔가 해줄 수 있었는데...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보나했는데...

나는 유가족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정규직이 되고 대학에 보내줄 수 있다는 말에 유민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진짜야? 정말로 대학갈 수 있는거야?!’ 라고 되물으며 기뻐했던 유민이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빚더미에 깔려 죽을 것 같아도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떠난 자식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돈 없고 가난한 나는 딸을 잃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돈벌어 호의호식 하며 산 것도 아닌데...

한달에 3만원 국궁은 한달에 200만원으로 둔갑을 하고 세상 사람들은 양육비 한 번 안 보내줬다고 욕을 합니다.

넉넉하지 못한 양육비를 보내며 가장 마음 아프고 미안했던건 난데...

돈이 없어 나쁜 아빠가 된 나는 유민이를 그리워할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없이 살았지만 돈이 사람보다 중하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세월호에 대해 돈돈 하는 강퍅한 사람들을 보면 씁쓸하기만 합니다.

가난하지만 유민이가 있어 행복한 아빠였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아픈 4월입니다.

유민이가 내 곁을 떠난 4월

내 마음에서 영원히 떠나보낼 수 없는 내 딸 유민이...

유민이가 그리워 미칠 것 같습니다.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만질 수 있다면. 안을 수 있다면.

아빠라 불리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고싶다 유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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