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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기쁨과 슬픔을 꾹꾹 담아

입력
2017.11.23 11:3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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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는 손잡고 그림 앞에 오래 서 있던 사이지요. 내가 좋아하는 시야. 미술관 구석에 쪼그려 앉아 너에게 속삭인 나는 쌓인 짐들을 한쪽에 밀어 넣은 단칸방에 살지요. 더는 더러운 개수대를 방치할 수 없다, 박스는 접어서, 페트병은 구겨서 정리하자 마음만 먹는 사람이고, 그런 건 없다 생각해도, 읽지 않은 책은 쉽사리 책꽂이에 꽂게 되지 않는, 작은 책꽂이를 두고 사는 사람이지요.

우리는 아직 젊고 앞으로도 젊을 거야. 그래서 고통 받을 거야. 버는 돈이 적어서 요절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 거야. 비장하게 읽으면 더없이 비장하고 무심하면 더없이 무심하게 읽게 되지요. 어느 쪽으로 읽는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망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동일하지요. 나의 살갗에 닿았던 너에게, 우리는 그럴 거야, 이런 얘기를 건넸지요. 속말이었을 거예요.

버려진 스포츠 양말 한 켤레는 누구보다 열심히 걸었던 그리고 어느 순간 열심히 걷기를 멈춘 투항의 흔적일까요? 미술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시를 속삭이는 모습은 보기 어떤가요? 궁리할 거리가 많은 책 등과 더러운 개수대와 미술관 한 복판과 미술관 한 구석. 그리고 눈 뜨면 네가 있어 부러 늦잠을 자던 방. 기쁨과 슬픔이 꾹꾹 담긴 이 섞임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거기서 보았던 그림 기억해? 눈빛으로 물으면 대답하는 눈빛이 있지요.

그래요. 세상에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많아요. 그중 하나가 사라지는 일. 내가 좋아하는 시야. 나랑 함께 없어져볼래? 고스란히 녹음되었던 이 시는 김행숙의 ‘미완성 교향곡’의 한 구절이지요. 이 시는 이렇게 이어지지요. 나랑 함께 없어져볼래? 음악처럼.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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