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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비선실세와 검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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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비선실세와 검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

입력
2016.12.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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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검사가 욕은 먹어도 역시 세긴 센가 보다. 애들도 다 알아보네.”

중학교 교사로 있는 친구가 전화하더니 대뜸 꺼낸 말이다. 친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을 가끔 알려주곤 하는데 최근 의외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학생들의 장래희망을 물었더니, 유독 검사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통령을 절대권력으로 배워온 학생들에게 대통령을 인정사정 없이 때려 잡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는 것이다. 서열 매기기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 검사는 이제 대통령보다 힘센 사람으로 각인됐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검찰에 안겨준 선물은 이것만이 아니다. 틈만 나면 검찰 권력이 비대하다고 떠들던 이들도 조용해졌다. ‘검찰한테 잘못 보이면 대통령도 이렇게 험한 꼴 당한다’는 메시지를 읽었던 모양이다.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팀장을 맡게 된 윤석열 부장검사는 검사라는 직업보다 정의사회 구현의 아이콘으로 부각돼있다. 검찰은 의도했든 안 했든 이번 수사를 통해 대한민국에 힘 자랑을 제대로 했고 정의롭다는 인상까지 남겼으니 최고의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정작 검찰 내부에선 이런 호의적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구성원들이 적지 않다. 최근 술자리에서 만난 3명의 전ㆍ현직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조직 비판에 소극이었던 A는 이런 말을 했다. “최순실 수사과정을 지켜보니, 검찰이 그 동안 얼마나 정권의 눈치를 보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르ㆍK스포츠 재단의 비리가 불거진 게 지난 7월이지만 검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린 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직후인 10월 말이다.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배당해 눈치를 보고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던 검찰은 대통령 힘이 빠졌다고 판단하자 돌변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수사팀을 꾸려서 전례 없는 속도로 수사했다. 재벌총수들을 이틀 만에 모두 조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에 나섰다. 특검에 자료를 모두 넘겨야 하는 시한부 수사의 영향이 컸다. 수사성과라는 시험지를 고스란히 특검에 보여주고 채점을 받아야 하니 약점이 잡혀서는 안 됐다. 전직 검사 B는 “검찰이 수사과정과 결과를 감시하는 외부기관이 없다 보니 심각성을 잘 모른다. 이번처럼 모든 사건을 재수사하는 특검을 도입하면 1년 넘게 끌고 있는 미제사건 상당수가 처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우병우 전 민정수석 이야기도 나왔다. 자존심까지 내팽개치며 우 전 수석에 협조하고 아부한 검찰 내 부역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들부터 솎아내야 한다고 흥분했다. C는 실명까지 거론하며 대검과 법무부, 서울중앙지검에 부역자들이 수두룩하다는 말했다. 그는 “이제 와서 정의의 사도인 양 나서는 모습이 너무 역겹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검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최근 우 전 수석의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 전 수석은 ‘되지도 않는 사건을 갖고 언제까지 괴롭힐 건가. 검찰이 너무 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만약 다시 한번 포토라인에 세운다면 청와대 있을 때 나한테 인사청탁 했던 검사들을 다 불어버릴 수도 있다.’ 우 전 수석의 지인은 “특정보직에 보내달라고 무릎을 꿇고 사정한 검사도 있다고 들었다. 실상이 밝혀지면 아마 검찰 조직이 해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 조직의 이면을 알았던 탓일까. 친구가 전화를 끊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검사도 좋지만 대한민국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비선실세가 되고 싶다”는 학생이 있었다고 했다. 당돌하지만 냉철한 분석도 곁들여서. “선생님, 저는 흙수저라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아요. 최순실처럼 세상에 까발려지지만 않으면 문제 없잖아요.” 최순실 사태는 학생들을 분노의 광장으로 모았지만 한편으론 허황된 꿈을 키우고 있을지 모른다. 비선실세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져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이 학생의 꿈을 좌절시키기 위해서. 그 역할을 검사에게 맡겨야 하는 게 찜찜할 뿐이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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