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아침을 열며]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을 위하여

알림

[아침을 열며]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을 위하여

입력
2018.01.04 14:49
31면
0 0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국정목표로 삼아 국민 여러분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가 OECD에 가입한 38개국 중 29위이고, 일과 삶의 균형 수준은 35위, 주관적 건강 상태는 최하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낸 신년사는 적폐 청산 이후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올해에는 경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3%대를 넘기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도 3만2,000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하지만, 평범한 시민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1인당 국민소득을 단순 계산하면 4인 가구 기준으로 가구 소득이 월평균 1,100만 원에 달한다. 2016년 4인 기준 중위 가구 소득인 440만 원의 2.6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현실과 거리가 멀다.

더욱이 과거와 같이 고도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없고, 시장에서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가능성도 없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재벌 대기업의 수출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을 통한 성장의 성과가 국민의 삶을 개선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일부 높였지만, 굳어진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주도하는 공적 복지가 전향적으로 확대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많은 것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과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아지고, 다양한 복지제도들이 새로 도입되거나 확대된다. 그러나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취업자의 25%에 달하는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2018년에도 적절한 소득과 공적 복지는 여전히 그림의 떡일 수 있다.

그리스 신화는 ‘타르타로스’라는 지옥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탐스러운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와 신선한 물이 가득하지만, 과일을 먹기 위해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가 위로 올라가 버리고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이면 수면이 내려가 버린다. 눈앞에 산해진미가 있지만, 손을 갖다 대면 사라지고 만다.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 대부분에게 2018년 새로운 복지제도가 도입되거나 바뀐다 해도 공적 복지는 여전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르타로스 지옥의 진수성찬일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역진적 선별성’으로 인해 공적 복지로부터 소외된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복지제도를 보편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영세 자영업자의 5년 생존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폐업 이후 영세 자영업자의 기본적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공적 복지는 없다. 새해부터 일부 영세 자영업자에게 고용보험료를 30%까지 지원한다고 하지만, 그 대상이 협소하고 기간도 2년에 그친다. 비정규직의 절대다수가 사회보험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수 정부 9년 동안 어떠한 근본 대책도 내놓지 못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달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가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 같은 공적 복지에 소외된 국민들에게 ‘그림의 떡’이자 ‘희망 고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 복지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기여금과 연동된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체제가 아니라 기여와 관계없이 국가가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의 신년사가 희망 고문이 아닌, 정부를 지지하며 기다릴 수 있는 실현 가능한 희망이 되도록 하기 위해문재인 정부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기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한국 복지국가의 구체적 비전과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