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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저출산이 유토피아를 가져온다면

입력
2017.03.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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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하려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 주제가 있다. 저출산은 정말 문제인가. 거듭 저출산의 위험성을 주입 받아도, 한 켠에서 저출산이 가져올 유토피아가 그려진다. 우리가 대면한 수많은 문제들, 왜인지도 모르면서 서로 괴롭히는데 쓰이는 관습들이 그 곳에서는 사라질 듯싶어서다.

죽도록 경쟁하고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10대, 20대들이 ‘그 곳’에서는 인정받을 거다. 직업교육을 받았든, 인문학을 전공했든, 공학을 전공했든 젊은이가 부족한 기업들은 이들을 환영할 테다. 먼저 저출산을 겪은 일본이 현재 그런 것처럼. 사교육비는 축소되고 가계는 숨을 돌린다. 행복한 젊은이들을 보면 어른들은 의무를 다한 냥 마음이 놓일 것이다.

‘그 곳’에서는 집값이 떨어져 누구나 작은 집 한 채를 가질 수 있게 될 거다. 집은 투기가 아니라 꽃을 심을 작은 마당을 가진 그저 살고 싶은 곳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회복한다. 집이 애초의 속성을 회복해 공공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탄소 배출은 줄어들고 도로에서는 미세먼지가 덜 배출될 것이며 우리는 강을, 들을, 산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노동력 부족은 노동력이 대우 받는다는 뜻이다. 아 비정규직이 없어질 지도 모르겠다! ‘그 곳’에서는 인생의 사이클이 자유롭게 재구성될 것 같다. 40, 50세를 넘어 신입사원이 되기도 하고 서열문화는 해체되고, 열정은 청년의 전유물이 아닐 테다. 국내에서도 채용 나이 제한이 없어진 공무원 세계에서 일부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구밀도 세계 3위, 거리마다 나를 닮고 너를 닮은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문득 들려오는 ‘너 하나 없어져도 아무렇지도 않단다’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그 곳’에서는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회의론자가 아니라도 지나친 상상이라는 건 안다. 인공지능의 보편화로 인구보다 일자리가 더 줄어들고, 저임금에 기대어 연명하고 싶은 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늘려 노동자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줄 세우는 것을 낙으로 삼는 기득권 문화는 바뀌기 쉽지 않다.

더구나 생산가능인구 급감에 따른 경제성장률 하락, 고령화로 인한 연금ㆍ의료비 급증, 연기금 및 재정 위협 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 상상력 빈곤이 있다. 100세 시대에 노인의 정의와 생산가능인구는 조정의 여지가 있으며, 재정문제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쌓여 있는 곳에 세금을 얼마나 적절히 부과하느냐는 의지의 문제이다.

설령 저출산이 가져올 디스토피아를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현재를 충분히 지옥으로 만든 현 정부에게서 그 말을 듣는 것은 소위 사람을 ‘빡치게’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은 제대로 먹이지도 않으면서(한끼 식비 2,348원), 대학 등록금 세계 2위인 나라를 만들어 놓고서, 실업자수를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 높여 놓고서 말이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세월호의 아이들이 있다.

저출산 문제, 경제성장 논의에 대한 냉소의 핵심은 ‘무엇을 위해서’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떨어지니 아이를 낳으라는 주문에는 “그래, 그 동안 경제가 성장해서 성장분은 누가 가져갔는데?”라는 질문이 치민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영국의 석학 앤서니 앳킨슨은 “지금과 같은 수준의 불평등과 함께 더 큰 파이를 갖는 것보다 더 공정하게 분배된 더 작은 파이를 갖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여기에 맹목이 아닌,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가 들어 있다.

사실 출산과 국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국가가 있기 전부터 인류는 사랑을 찾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 출산이 국가주의와 연결되면서 우리는 ‘가치의 전락’을 겪고 있다. 고학력 여성이 저학력 남성과 결혼하도록 백색음모(무해한 음모) 수준의 접근을 해야 한다는 어느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의 제안에서, 국민의 존엄성을 껌 딱지 정도로 보는 이 정부의 정신을 본다. 이런 도구론적 관점들이 지긋지긋하다. ‘존엄하게 살기’의 핵심이자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인 노동, 교육, 주택 문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문제들은 국민 한 명 한 명, 그리고 그들의 행복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그럴 생각(혹은 능력)이 없다면 ‘저출산이 문제다’라는 말은 하지도 말라.

이진희 정책사회부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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