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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방화문ㆍ막힌 비상구… 환자 안전은 여전히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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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방화문ㆍ막힌 비상구… 환자 안전은 여전히 뒷전

입력
2018.02.26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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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중소병원 가 보니

‘화재 시 연소 확산 방지 위해 방화문 닫혀야…’ 안내문 무색

5층짜리 단독건물 쓰는데도

1000㎡ 기준 못 미친다고

스프링클러ㆍ제연 설비 없고

화재경보기만 겨우 설치

지난 22일 경기 지역의 한 병원 방화문 겸 비상구 앞을 휠체어 3대가 가로 막고 있다.
지난 22일 경기 지역의 한 병원 방화문 겸 비상구 앞을 휠체어 3대가 가로 막고 있다.

‘방화문은 화재발생 시 연소확산 방지를 위해 항상 닫혀 있어야 합니다.’

지난 22일 오후에 찾은 경기 의정부시 A병원. 입원실이 있는 병원 꼭대기 5층의 방화문은 한 켠에 붙어있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살짝 열려 있었다. 게다가 이 문은 비상구 겸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휠체어 3대가 가로막고 있었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반대편 비상구는 특정시간(오전7시~오후7시)에만 문을 개방하고 있었다. 같은 층에 모두 3개의 비상구 겸 방화문이 있었지만 정상적인 것은 1개뿐이었다. 늦은 밤 화재가 발생한다면 입원 환자들의 탈출은 쉽지 않아 보였다.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에서 4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화재가 발생(1월26일)한지 25일로 꼭 한 달이 됐지만 피난약자인 환자들의 안전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취재진이 서울ㆍ경기 지역 중소병원 10여곳을 직접 둘러보니 소방안전시설 설치도 미비했고, 안전불감증도 여전했다.

세종병원 화재는 부실한 안전 투자와 허술한 관리 시스템이 낳은 참극이었다. 세종병원은 스프링클러ㆍ방화문 등의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고, 병상(95병상)도 종합병원(100병상 이상) 기준에 미치지 않게 운영하며 시설물 안전 정기 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중소병원(30~99개 병상)은 일반병원 857개, 요양병원 218개, 치과병원 229개, 한방병원 282개 등 총 1,586개다. 이 중 세종병원처럼 독립건물을 쓰는 1,000개 가까운 병원들이 화재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다.

취재진이 찾은 중소병원 중 스프링클러나 제연, 배연 설비를 갖춘 곳은 많지 않았다. 서울 강북구 B병원이나 경기 하남시 C병원은 5층짜리 단독건물을 쓰는 병원이지만 바닥면적이 기준(1,000㎡ 초과)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스프링클러도, 제연ㆍ배연 설비도 없었다. 병원측 한 관계자는 “굳이 의무가 아닌데 자발적으로 비싼 돈을 들여 설치할 병원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했다. 이들 병원은 연면적 600㎡ 이상 병원의 경우 설치하도록 한 자동화재탐지설비(화재경보기)만 겨우 설치하고 있었다. 세종병원 참사 이후 자체 점검을 강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는 곳도 있긴 하지만, 엘리베이터 등에 피난안내문을 부착하는 정도(서울 강북구 D병원)였다.

[저작권 한국일보]30판다시전국 중소병원 현황-박구원기자
[저작권 한국일보]30판다시전국 중소병원 현황-박구원기자

전문가들은 병원은 피난약자들이 모여있는 곳인 만큼 일반 건물보다 더 엄격한 기준의 안전기준이 적용되도록 법ㆍ제도를 빨리 손질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스프링클러나 비상발전기와 같은 시설은 환자 안전을 위한 필수 시설”이라며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모든 의료기관은 소방안전시스템을 갖추고 관리되도록 법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의료기관은 건물의 면적 제한 없이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소방시설법 개정안(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체보호대 사용 준수사항을 규정하는 의료법 개정안(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돼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기존 병원 건물에 스프링클러만 추가로 설치하는데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세종병원 참사에서 문제가 된 과도한 환자 결박과 의료인력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의료법을 충족하는 인력 확충이 필요한데 이 역시 비용이 장벽이다. 결국 안전을 위한 투자 비용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쏟아야 하느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송 중소병원협회장은 “기존 건물까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소급되면 비용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은영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다음 달 말까지 중소병원 1,364개(병상 없는 치과병원 제외)에 대한 전수 점검을 할 예정”이라며 “안전관리 실태가 파악되면 6월말까지 의료기관 화재안전 관리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25일 경남의 한 중소병원 3~5층 비상구 통로에 메트리스와 휠체어 등이 쌓여 있어 출입에 불편을 주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25일 경남의 한 중소병원 3~5층 비상구 통로에 메트리스와 휠체어 등이 쌓여 있어 출입에 불편을 주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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