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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집은 사람이 살아야지!

입력
2017.10.19 14: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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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이 살아야지! 안 그러면 망가져!” 강화도 솔정리 고씨 가옥이라는 문화재 고택에서 들었던 할머니의 말씀이다. 한 방송국 촬영팀과 함께 강화도 근대건축 답사를 다녀왔는데, 촬영 말미에 방문했던 고택에서였다. 할머니는 강화도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며느리로 평생 살아왔는데, 이제 그 집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다. 집이 문화재가 되면서 건물 보존의 이유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 가족은 바로 옆에 현대식 주택을 짓고 생활한다.

할머니로부터 이 집을 지은 유래와 당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온 가족이 모여 살던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갓 시집와서 썼던 방, 도련님방,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방을 차례대로 설명했다. 할머니 이야기는 광대하게 넓은 부엌과 찬방에서 절정에 달했다. 시댁식구뿐 아니라 시아버님 공장 인부들, 행랑채에 살던 부리던 사람들 찬까지 만들며 고생한 맏며느리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한마디. “사람이 안 사니까 집이 망가지는 거 같아. 그렇다고 고치지지도 못하고. 집에 사람이 살아야 유지가 되지.”

성공회 강화읍성당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이며 서양 기독교 문화와 한옥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번엔 자칭 성당지기라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은퇴 후 성당을 돌보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성당 곳곳의 재미난 지점을 알려주더니 이렇게 이야기한다. “문화재 건물이라고 문닫아 놓은 데가 많은데, 여긴 안 그래요. 매주 예배도 보고, 구경하러 오는 분들이 보고 가시라고 늘 문을 열어둬요.”

건축 유산 답사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고쳐놓고 방치되는’ 건물을 만날 때다. 문화재 건물이거나 지자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물이기에 예산을 들여 옛 모습대로 고치기만하고 문을 닫아둔 곳들을 종종 만난다. 사실, 문화재 건물을 복원하면서 시간의 정서가 사라진 듯해서 몹시 안타깝고 불편해진다. 문화재의 역할도 있으니 그런 부분을 이해한다고 쳐도 돈과 노력을 들인 건물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관리상의 이유로 문을 잠궈 둔다면 무엇을 위한 건축인가, 누구를 위한 문화재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강화도 여행이 특별했던 건 이 섬에 대한 그간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초지진, 고려궁지, 병인양요 등의 역사유적지 외에 작은 소읍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일제강점기에서 1970년대까지 엄청난 규모의 직물공장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근대산업유산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강화 특산물들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1970년대까지 강화도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섬유산업의 고장이었다. 번성한 도시를 말할 때 늘 예로 들게 되는 이른바 ‘돌아다니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도시였다. 대구 수원이 섬유도시로 성장하면서 강화도의 인견과 소창 산업은 사양길에 들어섰고 강화읍에 북적거리던 노동자들과 공장기계들도 하나 둘씩 섬을 떠났다. 과거의 영화로움이 동네 노인들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도 강화도에는 당시 직물산업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강화 최초의 인견공장인 조양방직 공장과 사무동은 새로운 변화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규모 자체가 거대해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문, 트러스, 벽돌 하나하나가 무척 섬세하다. 방직기의 소리로 꽉 찼던 공간은 커피향이 채울 것이고, 방직기 사이를 왔다 갔다 일하던 노동자들 대신 여유있게 앉아 커피와 담소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북적일 것이다. 거대한 천창과 트러스는 압도적인 공간감을 전해준다. 본래의 기능을 다하고 전혀 다른 용도로 계속 변하며 살아가는 것, 건축물에게 생명이 있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아 설레고 기뻐’ 라고만 할 것 같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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