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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작가는 잠수사다

입력
2016.12.0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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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일이 나와 어떤 연관을 가지는가.’ 스무 살의 내가 문학을 처음 접하면서 처음 만난 질문이었다. 처음엔 그저 재미있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점점 내가 남의 이야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도 괜찮은 건지 의구심이 솟아났다. 문학은 전부 누군가의 이야기, 즉 남의 이야기였다. 친구들은 제발 남의 이야기 그만 읽고 내 인생에 집중하라고 했다. 취업준비나 열심히 하라는 현실적인 충고를 참 많이도 들었다. 그래도 남의 이야기를 일상에서 떼어놓지 못했다.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확고한 논리를 획득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읽어나갔다. 뒷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무조건 좋아서 헤어질 줄 모르는 연인들처럼.

그 무렵 문학과 더불어 빼놓지 않고 보던 TV 프로그램이 ‘인간시대’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방영시간이 되면 버스에서 내려 TV 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전파사 앞 길거리에서 찔끔찔끔 울면서 배한성의 나레이션을 들었다. 다시 버스에 오르면서 숱한 다짐들을 했었다. ‘아무래도 나는 세상과 결혼해야겠어.’

집에 와서 소설을 읽으면 인간시대에 나온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고, 인간시대를 보면 소설 속 어느 주인공이 떠올랐다. 소설을 읽는 것과 인간시대를 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었다. 모두 남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일이었다. 세상과 결혼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희미해졌지만, 지금도 내 인생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의문을 던질 때는 그 다짐을 다시 불러오곤 한다.

최근 김탁환 작가와 함께 행사하면서 소설 ‘거짓말이다’를 노래로 발표했다. 깊은 어둠 속에 있는 아이들을 포옹하여 함께 나오는 잠수사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을 읽고 또 읽는데도 노래가 잘 나오지 않았다. 왜 이러지 하면서 고민하다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악보를 덮고 골목으로 나와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난주 진도 앞바다에서 만났던 별들이 거기 있었다. 가물거리는 별빛들을 보며 말했다. “아이들아 너희의 노래를 내게 들려주렴.” 고요히 기다린 후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래를 마음에 받아 적었다.

‘너는 어떤 아이였을까 무엇을 좋아했을까 / 너는 가도 질문은 남아 그럼 넌 안 간 거다 / 너희 이름 하나하나 모두 불렀는데도 / 어둠이 아직 남아있다면 / 처음부터 다시 부를 거다 / 너희 이름을 처음부터 다시 부를 거다.’

김탁환 작가는 진실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이야기는 지난 일을 지금 여기에 불러오고, 사소한 것을 의미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는 무엇보다 남의 일을 내 일로 만들어놓는다!

나는 다시 내 스무 살의 의문을 불러온다. 왜 나는 지금 너희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왜 너희 이야기는 내 이야기인가. 스무 살엔 남의 이야기가 그대로 내 이야기임을 모르고 읽었다. 살아보니 사람마다 삶의 모습은 비슷하고, 운명의 비바람은 모든 사람에게 불어오기 때문에 그걸 맞는 모습도 대처하는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겠다. 그래서 어느 작가는 소설은 영혼의 보험 같은 거라고 했던가.

작가는 문학이라는 생명줄을 잡고 인간의 심장으로 내려가는 잠수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숨이 막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까지 기어코 내려가고야 마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다. 그래서 작가는 한 작품을 끝내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평생 못 헤어나오기도 한다. 또한 작가는 우리가 평생 가보지 못하는 그 깊은 곳의 질감을 느껴본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을 아껴야 한다. 그래야 남의 이야기, 결국 나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게 된다. 이야기가 끝나면 이 세상도 끝난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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