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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공감의 덫

입력
2016.12.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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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처음 당선됐을 때 한 소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공감(Empathy)이 충분치 않단다. 이걸 바꾸는 건 너희 세대에 달렸어.” 오바마는 일반적인 관점을 밝혔던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최근 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가 펴낸 책의 제목 ‘공감에 반대하다’(Against Empathy)는 충격적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무언가에 어떻게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리는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공감해야 하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오바마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는 한편 정치분석가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백인들, 특히 미국이 제조업에서 최강국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러스티 벨트 유권자들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난달 대선에서 졌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미국 노동자들에 대한 공감이 멕시코나 중국의 노동자에 대한 공감과 긴장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멕시코와 중국 노동자는 실직할 경우 미국 노동자보다 훨씬 더 궁핍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

공감은 우리가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대상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도록 이끈다. 좋은 일이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트럼프는 반(反)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선거유세 연설에서 미등록 이민자에게 비극적으로 살해된 케이트 스타인리 사건을 이용했다. 무등록 이민자가 이방인의 목숨을 살린 사건도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당연히 트럼프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새끼 바다표범처럼 크고 둥근 눈을 가진 동물은 우리가 엄청나게 큰 고통을 가하는 닭보다 훨씬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심지어 로봇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로봇에 해를 가하지 않으려 한다. 반면 차갑고 끈적거리며 비명을 지를 수도 없는 물고기는 연민을 거의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조너선 밸컴이 ‘물고기가 알고 있는 것(What a Fish Knows)’에서 주장한 것처럼 물고기도 조류나 포유류처럼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가 많은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예방접종 때문에 피해를 본, 또는 본 것으로 생각되는 일부 어린이들에 대한 공감은 위험한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것을 꺼리게 한다. 그 결과 수백만명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고 수백명의 아이들이 병에 걸렸다. 예방접종 부작용보다 질병 때문에 (심지어는 치명적일 정도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공감은 우리가 불공평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죽음을 앞둔 어린이와의 인터뷰를 듣도록 했다. 일부에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라고 말했고, 다른 이들에겐 어린이가 어떻게 느낄지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모두에게 물었다. 그 어린이가 치료 대기 리스트에서 우선권이 있다고 판단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먼저 치료를 받게 되길 바라는가. 아이가 어떻게 느낄지 상상해보라는 말을 들은 사람 중에선 4분의 3이 그렇다고 했다. 이와 달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라는 말을 들은 사람 중에선 3분의 1만이 그렇다고 했다.

‘1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명의 죽음은 통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공감 때문에 개인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대하지만, 큰 숫자 앞에선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미 오리건 주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 의사결정연구소는 최근 ‘ArithmeticofCompassion.org’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숫자에 대한 마비’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대규모 문제에 대한 정보 소통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이 사이트의 설립 취지다. 개인의 생생한 이야기가 입소문으로 퍼지고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모든 사람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을 것이다.

공감에 반대하는 것과 연민(Compassion)에 반대하는 것은 다르다. ‘공감에 반대하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블룸이 마티유 리카르에게 공감과 연민의 차이에 대해 어떻게 배웠는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리카르는 종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불교 승려다. 신경과학자 타니아 싱어(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리카르에게 ‘연민 명상’을 해보라고 하면서 뇌신호를 스캔했는데, 사람들이 흔히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때 활발하게 움직이는 뇌의 영역이 리카르의 경우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리카르는 싱어의 요청에 따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긴 했지만 그에겐 불편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는 연민 명상이 “강한 친사회적 동기부여와 관련한 따뜻하고 긍정적인 상태”였다고 말했다.

싱어는 명상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연민 명상을 해보라고 훈련시켰다.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해 낯선 이에게로 옮겨 가며 여러 사람에게 친절한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그러한 훈련은 더욱 친절한 행동으로 이끌 수 있다.

연민 명상은 때로는 ‘인지 공감’이라 불리는 것과 가깝다. 우리의 감정보다는 타인에 대한 생각과 이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블룸의 책에 담긴 마지막 중요한 메시지와 연결된다. 정신과학이 나아가는 방향은 우리의 삶에서 이성적 사고의 역할을 경시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 그 메시지다.

심사숙고 후의 선택과 태도 중 어떤 건 벽의 색이나 방의 냄새, 손 소독제의 존재처럼 관련 없는 요소들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것을 연구자들이 증명한다면 그 연구 결과는 심리학 저널에 소개되고 심지어 유명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적절한 증거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하는 연구는 출판되기도 어렵고 홍보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니까 심리학에는 애초부터 우리가 분별 있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관점을 거스르는 편견이 내재해 있다.

이성적 사고의 역할에 대한 블룸의 좀 더 긍정적인 관점은 내가 윤리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여기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공감과 다른 감정은 종종 우리가 옳은 일을 하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옳지 않은 일을 하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윤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우리의 사고 능력은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ㆍ윤리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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