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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주룽지의 기부와 MB의 회고록

입력
2015.02.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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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부가는 누구일까. 최근 중국공익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중국기부 100걸(杰) 명단’에서 비(非)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2년 연속 이름을 올린 이가 있다. 바로 1990년대 후반 중국 경제 개혁을 추진하며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탐관(貪官)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나의 것”이라는 말을 남긴 주룽지(朱鎔基ㆍ87) 전 총리다. 1998년3월부터 5년간 총리를 지내고 현직을 떠난 지 이미 10여년이 지난 그가 무슨 돈이 있어 기부왕이 될 수 있었을까. 비결은 회고록에 있다. 그는 총리 시절 비공개 발언과 연설, 내ㆍ외신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 등을 정리한 주룽지, 기자의 질문에 답하다와 주룽지강화(講話)실록, 주룽지상하이강화실록 등의 회고록을 펴 냈다. 총리에서 물러난 지 6년여가 지난 2009년부터 2년마다 출판된 이 책들은 지금까지 각각 130만부 이상 판매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이 책들의 인세를 고스란히 기부하고 있다.

주 전 총리가 지난 2년간 기부한 금액은 무려 4,000만위안(약 70억5,000만원)에 달한다. 그는 2009년 처음 회고록을 낼 당시 “원고료와 인세 등은 모두 사회 공익 사업에 쓸 것”이라며 “빈곤 지역 어린이의 학습 및 생활 조건 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11년 ‘스스(實事)조학(助學ㆍ장학)기금회’를 결성했다. 이후 주 전 총리의 회고록 인세는 자동으로 이 기금회를 통해 빈곤지역 학생들을 돕는 데 사용되고 있다.

중국 지도자중에는 고위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된 기억이 사익을 챙기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직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인 만큼 개인의 소유가 아닌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이러한 기억과 경험을 책으로 내 수입이 생겼다면 이 또한 마땅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게 이들 철학이다.

실제로 리루이환(李瑞環ㆍ81)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도 2008년 저서 학철학용철학(學哲學用哲學)의 원고료 110만위안(약 1억9,500만원)과 2010년 저서 무실구리(務實求理)의 원고료 100만위안(약 1억7,500만원)을 ‘쌍쯔(桑梓)조학기금회’에 기부했다. 리란칭(李嵐淸ㆍ83) 전 부총리도 2005년 원고료 200만위안(약 3억5,000만원)을 푸단(復旦)관리학장려기금회에 기부했다. 2004년에는 덩샤오핑(鄧小平)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가족들도 원고료 등 100만위안을 장학재단에 출연했다.

이들 이외에도 적지 않은 중국 지도자가 회고록 원고료와 인세 등을 사회환원 차원에서 기부하고, 남모르게 장학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재단 명칭에 자신의 성이나 이름, 호를 넣는 것조차도 금기시하고 있다.

이런 중국과 달리 미국에선 전직 대통령이 임기 동안의 숨겨진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것이 이미 큰 돈벌이 수단이 된 양상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 2004년 펴낸 회고록 마이 라이프(My Life)의 인세 수입은 3,000만달러(약 330억원)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회고록을 통해 큰 돈을 챙겼다. 물론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순 없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을 펴냈다. 출판 시점의 적정성이나 내용의 진실성은 차치하고 인세를 과연 어떻게 쓸 지에 대해 아직 알려진 건 없다. 전직 지도자의 기억과 경험을 과연 개인만의 소유로 볼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은 회고록 수입에 대해 중국의 길을 참고할지, 미국식 모델을 따를지 궁금하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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