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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부가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입력
2018.06.01 10:1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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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큰 정부’를 외치며, 소득주도 성장, 갑질문화 근절, 재벌구조 개혁 등 경제의 각 분야에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펴고 있다. 최근에 악화된 계층 간 소득격차나 양극화 정도를 고려할 때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시장경제체제를 기본으로 채택하고 기업과 개인(이하 ‘기업’)이 경제활동의 주된 주체인 우리 경제에서 정부가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일까?

우선, 정부가 할 일은 우리 경제를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서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 또는 기업이 할 수 없거나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제대로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분야에서 정부가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질서의 기본이 되는 규칙을 제대로 만들고 시장규칙이 시장참여자에 의해 준수되는지 감시하여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하도급과 같은 경제질서법을 잘 만들고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그 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ㆍ소비자 간의 경우처럼, 당사자 간에 협상력의 중대한 차이가 있어 공정한 협상이나 거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에 집단소송ㆍ징벌적손해배상과 같은 제도를 통하여 당사자 간의 협상력 차이를 보정해 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에 필요한 정보가 잘 제공되도록 공시제도를 도입하고, 생산자ㆍ소비자 간 분쟁발생에 대비하여 효과적인 분쟁조정 및 피해구제 절차를 만드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또, 기업의 창의와 자유로운 활동을 불필요하게 억압하는 규제를, 결자해지 차원에서, 발굴하여 제거하거나 개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은 기업만이 할 수 있거나 기업이 정부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에 정부도 뛰어들어 직접 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나 간섭을 하는 것이다. 기업의 자유롭고 혁신적인 활동이 억제되고 기대효과보다 훨씬 큰 부작용과 폐해가 생겨서 우리 경제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며 자원의 낭비와 소비자 후생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치킨시장은 수많은 사업자나 자영업자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피자, 족발 등 대체상품도 많은데, 2017년 3월에 BBQ가 치킨 가격을 인상하려 하자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를 무기로 겁을 주고 농수산부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개입하여 철회시킨 게 대표적인 사례다. 2011년에 국제원유가는 내리는데 국내 휘발유값이 잘 안 내려간다는 지적이 있자 정부가 도로공사와 농협을 동원하고 세제ㆍ금융 혜택을 주면서 알뜰주유소 제도를 도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민간주유소 (약 1만2,000대) 위주로 잘 작동해 온 주유소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여 민간주유소와의 관계에서 불공정거래를 주도하고 공공부문의 자원을 본업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곳에 낭비한 것이다.

며칠 전에 규제개혁위는 통신사의 보편요금제 도입을 의무화한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것도 정부주식이 한 주도 없는 민간통신사의 요금 체계나 수준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고 보상도 없이 손해를 강요하는 것으로서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에 일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정부는 직접 개입이나 간섭에 대한 요청이나 유혹을 이겨 내고, 담합 및 지배적 지위남용 감시, 원자재 관세 인하, 유통경로 개선, 진입장벽 제거를 통한 신규사업자 진입 유도 등 간접적이고 시장친화적인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우리 기업이 성장하고 소비자의 선택과 후생이 증진되며 우리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정부가 ‘큰 정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가려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김병배 공정거래실천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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