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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그들만의 '공영방송'

입력
2017.09.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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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총파업 지지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총파업 지지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라크 쿠르드 자치지역에서 온 방송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그가 쿠르드 자치지역 유력 방송국에서 뉴스앵커 겸 프로듀서로 일한다고 해 국영인지 공영인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연신 저었다. 그러면 민영방송? 그는 “쿠르드민주당이 운영하는 방송국”이라는, 의외의 답을 했다. 당영방송이라니. 생소했다. 쿠르드 자치지역의 사정을 살펴보니 그럴 만도 했다. 독립국가는 아닌데 국가 설립을 준비하는 정당들이 지역을 자체적으로 다스리고 있으니 당영방송이 방송 체계의 중심 역할을 할 수밖에. 어느 사회든 정치 체제나 사회 발전 수준에 따라 방송의 소유 구조나 운영 형태가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국내 방송 체계가 공영방송 위주라는 점에 자부심을 한때 가진 적이 있다. 국가가 방송국을 직접 운영하며 정부 입맛대로 뉴스를 내보내거나 국민 계도 프로그램을 주로 만드는 권위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자부심은 자괴감으로 변질됐다. 국내 공영방송은 소유 구조만 공영일뿐 운영 방식은 국영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잘 안 봐서 모른다. 꽤 오래 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얼마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내놓아 화제가 된 답변 중 하나다. “최근 MBC, KBS의 불공정 보도를 봤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총리가 자기 나라의 공영방송을 잘 보지 않아도 되냐는 반감이 조금 들기도 했으나 고개가 어쩔 수 없이 바로 끄덕여졌다. 업무 때문에 방송을 두루 시청해야 할, 특히나 지상파 방송의 주요 프로그램을 봐야 할 위치에 있는 나조차도 양대 공영방송인 KBS와 MBC에 선뜻 눈이 가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 4일 KBS와 MBC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방송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양대 공영방송의 파업은 처음이 아니기에 그리 낯설지 않은데, 이번 파업에선 예전에는 찾기 힘들었던 현상을 보게 된다. 국가 기간시설 중 하나로 여겨지던 공영방송이 파업하고 비정상적인 방송이 지속돼도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매체 환경이 크게 변한 점이 변수로 작용했을 수 있으나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이 아니어도 긴요한 정보를 얻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으니 공공성이 떨어지고 공정성이 약한데다 재미는 덜한 공영방송을 굳이 찾아보는 사람이 없게 된 셈이다.

인터넷에선 KBS와 MBC에 대한 비아냥이 넘쳐난다. 특히 MBC를 향한 조소가 거세다. ‘안 보면 그만’이라는 감정 섞인 의견이 적지 않다. 정말 외면하면 끝일까.

한 가구가 한 달에 내는 TV수신료는 2,500원. 1년 동안 가구당 TV수신료는 3만원이다. 외식 한 번에도 지갑 열기 두려운 서민에게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KBS는 매년 TV수신료 6,000억원 가량을 재원으로 쓴다. MBC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파가 귀하고 귀하던 시절, 지상파 전파 사용 자체가 크나큰 특혜였다. MBC의 10조원대 자산은 국가 자원을 활용했기에 축적 가능했다.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유지되거나 공공재를 바탕으로 거대 자산을 형성한 방송이 망가지면 국민만 손해다.

매체 환경 변화로 공영방송의 위상과 역할이 변했다고 하나 공영방송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두 공영방송은 방송계가 자본의 논리에 휩쓸릴 때 시청률이나 사적 이익에서 자유로운 엄정한 잣대 구실을 해야 한다.

노사의 잘잘못을 따지자면 경영진의 잘못을 더 추궁하고 싶다. 공영방송은 사회 곳곳을 살펴야 하는데 회사 구성원 수 천명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 사장들이라면 공영방송 수장으로서 이미 자격미달이다. 그들은 파업으로 방송 파행이 이어져도 이를 수습하려는 의지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라제기 문화부장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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