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20조 조성 4조 집행
한은법 개정 필요없고 손실 최소화
당시 대출자 산은, 이젠 수혈대상
펀드 조성에 시간 소요 고려해야
정부와 함께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을 논의 중인 한국은행이 “출자보다는 대출을 선호한다”며 2009년 시행됐던 ‘자본확충펀드’를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하면서 정부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한은이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해 주길 바랬던 정부는 일단 말을 아끼며 대응 방안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4일(현지시간) 독일 출장 중 기자간담회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으로 언급한 자본확충펀드는 출자가 아닌 대출 모델이란 점이 특징이다. 출자와 대출 모두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한다는 점은 같지만 출자와 달리 대출은 담보가 있어 회수 가능성이 훨씬 높다. ‘국민 부담으로 부실기업을 지원한다’는 논란을 피하면서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이주열 총재)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자본확충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시중은행에 자본 여력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은 대출 10조원을 받은 산업은행이 2조원을 더해 12조원을 대출하고, 기관ㆍ일반의 8조원 투자를 더해 20조원 규모의 ‘은행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한 뒤, 시중은행이 발행한 후순위채 등을 사들여 은행들의 자본금을 늘리는 구조였다. 은행들은 커진 자본 여력으로 중소기업 대출과 기업 구조조정, 부실채권 정리 등에 나서는 조건이었다. 다만 당시엔 은행들이 이미지 실추 등을 고려해 예상보다 신청을 꺼렸고 실제론 3조9,500억원(한은 대출은 3조3,000억원)만 집행됐다.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되자 한은은 대출금을 회수했다.
한은이 이번에도 자본확충펀드를 운용하게 된다면 펀드를 통해 국책은행의 채권을 사주는 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한은이 산업은행 채권(산금채)을 발행 단계에서 직접 사려면 한은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한은의 대출금으로 조성한 펀드가 시장에서 산금채나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를 사들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만으로 대출이 가능해 신속한 집행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주열 총재의 ‘선수’에 정부는 일단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엔 대출자로 동참했던 산은이 이번엔 수혈 대상이 된 점, 2008년 12월에 계획을 발표하고 실제 펀드는 2009년 3월 이후 본격화됐듯 펀드 조성까지 걸리는 시간 등도 고려 요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6일 “딱히 할 말이 없다. 노코멘트”라고 말을 아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은과 협의해 가장 적절한 방안을 내놓겠다는 원칙 외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전했다.
이날 독일에서 귀국한 이주열 총재는 자본확충펀드 발언과 관련, “하나의 예를 제시한 것일뿐, 정부와의 협의체에서 앞으로 충분히 논의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역시 말을 아꼈다.
다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출자 대신 대출을 하겠다는 건 한은의 생각”이라며 “중앙은행의 참여 방식은 기재부 등과 공동으로 논의할 사항”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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