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등록 : 2017.10.09 10:27
수정 : 2017.10.09 16:26

[김원중의 고전산책] 두 신하의 엇갈린 운명

등록 : 2017.10.09 10:27
수정 : 2017.10.09 16:26

춘추시대 대국인 진(晉)나라의 헌공(獻公)이 애첩 여희(驪姬)를 들이면서 피비린내 나는 궁정 암투가 시작되었다.

촉망 받던 태자 신생(申生)이 죽임을 당하고 다른 공자들도 제거되는 와중에서 그 난을 피해 결국 조국을 떠나 길고 긴 망명 생활을 한 진 문공(文公) 중이(重耳)가 있었다.

중이가 조(曹)나라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조나라 군주인 공공(共公)이 매우 무례하여 그의 옷을 벗기고 그 몸을 관찰하려고 했다. 항간에 중이의 갈빗대가 기형인 통갈빗대라는 설이 떠돌았고, 통갈빗대를 가진 이가 천하를 잡는다고도 하니, 공공으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나, 공공은 기어이 옷을 벗겨보니 정말로 통갈빗대였다. 대부 이부기(釐負羈)와 숙첨(叔瞻)이 공공을 곁에서 보좌했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숙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신이 진나라 공자의 모습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군주께서는 그를 무례하게 대우하셨으니, 그가 만일 자기 나라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군사를 일으킬 것이니 (우리) 조나라에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군주께서는 차라리 그를 죽여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한비자> ‘십과 十過’).

그러나 공공은 중이를 과소평가하고 죽이지 않고 숙소에 쉬도록 했다. 한편, 이부기는 집에 돌아와서도 영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그런 낌새를 금세 알아차리고는 무슨 이유냐고 물어보자, 이부기가 조정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서 그 무례하게 군 현장에 자신도 있었기에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이 두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부기의 아내는 사태를 냉철하게 판단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중이야말로 만승지국의 군주감이며, 주변에 따르는 자들도 만승지국의 재상이 될 만한 걸출한 인재들이다. 지금은 비록 곤궁하여 망명길에 우리 조나라에 들른 상황에서 왕이 그에게 무례하게 대했다면 분명 훗날 화근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남편에게 다른 관계 즉 미래의 권력에 대비하라는 충언을 하고 방법도 제시했다. 이부기는 곧바로 항아리를 준비하여 그 속에 황금과 음식을 가득 채우고 나서 귀한 벽옥을 맨 위에 얹어 밤에 사람을 시켜 은밀히 중이에게 보냈다. 중이는 두 번 절을 하고 음식을 잘 먹고 벽옥만 되돌려 주었다. 그러면서 중이는 이부기의 배려에 속으로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다시 초나라로 갔다. 그런데 대국인데도 초나라 성왕(成王)은 조나라와 달리 극진하게 예우하였다. 중이는 다시 진(秦)나라로 가 3년 동안 목공(穆公)의 휘하에 있으면서 갖은 노력을 기울여 그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했고, 그것은 빛을 발했다.

목공은 중이를 도와주고 싶었다. 더구나 자신이 헌공과 교분도 두터워 진나라와는 형제나 다름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게다가 헌공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종묘에서 불제(祓除, 재앙을 물리치는 의식)도 드리지 못하고 사직에 희생을 바치지 도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도 한몫 했다.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신하들 또한 이구동성으로 호응했다.

목공은 전차 500대와 정예 기마병 2,000, 보병 5만명으로 중이를 도와 진나라 군주로 세웠다. 중이는 곧바로 보복 전쟁을 일으키려 했으나 내실을 다지라는 현신들의 충언에 귀 기울여 다시 3년 동안 기다리고 나서 기원전 632년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쳤다. 조나라 왕을 포위하면서 숙첨을 내놓으라고 해 그를 죽이고 시신을 본보기로 내걸었다. 그러나 그가 수모를 당했을 때, 은밀히 도와준 이부기에 대해서는 사람을 보내 이렇게 전하도록 했다.

“진(晉)나라 군대가 성 밑에 다가와 있으므로 나는 그대가 피할 곳이 없음을 안다. 그대가 사는 마을에 표시를 해둔다면 과인은 장차 명령을 내려 군대들로 하여금 감히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한비자> ‘십과’). 다급한 상황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표시를 해 두자, 이부기가 사는 마을로 달려와 보호 받은 조나라 백성들이 무려 700여 가구나 되었다고 한비자는 기록한다.

과연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조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다.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여 있는 나라니 누란지위의 상황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조나라 군주는 미래 권력인 중이를 냉대하고 무례하게 굴어 화근의 싹을 키운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처신을 한 두 신하의 엇갈린 운명이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라의 앞날을 진정으로 생각하여 중이라는 미래의 위험요소를 제거해 버리라고 한 숙첨이 충신으로 귀감이 될 만하지만, 오히려 그의 말이 자신과 나라마저 풍전등화의 위기로 치닫게 했으니 그의 충심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부기의 행동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군에게 배은망덕한 이중적인 처신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자신도 살고 성안의 적지 않은 백성들도 살렸다. 고민만 하는 우유부단한 이부기에게 진문공의 미래 가치를 분석하고 당시 상황에서 남편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6년여 이후의 일까지 대비하도록 만든 아내의 혜안에 높은 점수를 매기게 된다. 물론 가장 큰 잘못은 작은 나라이면서도 우쭐함으로 대국의 공자에게 오만방자한 공공의 태도에 있지만 말이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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