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대상 단과대 설립 추진에
“학위장사… 의견 수렴 없이”
대규모 경찰 진입, 충돌사태까지
“평생 교육시대, 대학도 변해야”
“대학 상업화 가속 우려” 공방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지 돈벌이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총장이 잊고 있어요. 프라임사업, 코어사업 등 학생들 의견은 듣지도 않고 학교가 장삿속만 채우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31일 오후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재학생 김모(22)씨는 직장인을 상대로 한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을 설립하려는 학교 방침에 크게 분노했다. 미래라이프대 신설에 관한 학칙 개정안을 심의하는 대학평의원회 회의가 열린 지난 28일 학생 400여명은 학교 측의 일방 추진에 반발해 본관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교수, 교직원 등 5명이 46시간 동안 건물에 갇혀 있었고, 급기야 학교 측 요청으로 30일 경찰력 1,600명이 투입돼 10여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최근 시국 사건이 아닌 학내 문제로 이 정도 규모의 경찰력이 대학에 진입한 것은 드문 일이다. 본관을 지키던 학생 100여명은 이날부터 책을 읽는 ‘공부시위’를 이어가며 최경희 총장 탄핵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극심한 학내 분쟁을 촉발한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는 정부가 주도하는‘평생교육 단과대(평단)’ 재정지원 사업 일환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가 이름을 팔아 ‘학위 장사’에 골몰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프라임(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코어(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 등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대학 구조조정ㆍ재정지원 정책을 놓고 상업화 논란이 가열되는 분위기다.
교육부 평단사업은 고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인이나 30세 이상 무직 성인이 4년제 대학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이른바 선취업ㆍ후진학을 장려하기 위한 사업이다. 선정 대학에는 연간 30억원 내외의 예산이 지원된다. 이화여대는 경력단절 여성 등을 위한 여성 특화형 운영 모델을 제시해 지난달 15일 동국대, 창원대, 한밭대와 함께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미디어 콘텐츠를 기획ㆍ제작하는 뉴미디어산업 전공과 건강ㆍ영양ㆍ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산업 전공을 운영할 계획이다.
학생들이 문제 삼는 것은 우선 학교 측의 결정이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이 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미래라이프대 사업은 학생들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한 것은 물론, 의사록도 공개하지 않은 졸속 날치기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구조조정과 재정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학교가 학문탐구 기능과 거리가 먼 정책을 잇따라 도입한다는 점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화여대는 앞서 3월 인문학과 타 전공을 융합하는 코어사업대학에 선정돼 3년간 96억원의 정부 예산을 확보했다. 5월에는 프라임사업에도 뽑혀 미래 여성공학 인재양성 등을 목표로 4개 학부, 9개 전공을 신설ㆍ재편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평생학습자를 대상으로 이미 1984년부터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을 운영 중인데 굳이 중복 과정을 만들고 거액의 지원금을 받는 건 돈으로 학위를 파는 행위와 같다”고 말했다. 졸업생 정모(33)씨도 “뒤늦게 공부를 하려는 직장인 여성들에게 뷰티 전공을 선택하라는 것 자체가 학교가 학문 보급보다는 돈 벌 궁리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와 학교 측은 이제 대학도 일반인에게 문호를 개방해 평생교육 기관으로서 활동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반박한다. 홍민식 교육부 평생직업교육국장은 “정부의 사업 의도와 대학의 교육 목표가 부합해 사업 대상으로 선정했다”며 “이화여대가 단과대를 학위장사 수단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도 “고등교육을 받을 능력을 갖춘 고졸 직장인에게 진학의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를 학생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평단사업에 대한 논란은 취업률과 재정확보 등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정부의 요구 앞에서 갈림길에 선 대학들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재교육 필요성이 점점 커지는 추세를 감안할 때 평생교육 자체가 미래지향적인 것은 맞지만 학위를 대가로 학생을 수용하는 형태는 문제가 있다”며 “학문탐구를 중시해 온 대학의 기존 목표와 기능인 양성이라는 미래 가치를 조화롭게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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