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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이토록 끔찍한 사랑, 순정인가 집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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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이토록 끔찍한 사랑, 순정인가 집착인가

입력
2017.08.0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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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의 속편 격인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집착, 그 광기와 지질함을 온 몸으로 감행하는 남자를 그린다. 오픈하우스 제공
‘리플리’의 속편 격인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집착, 그 광기와 지질함을 온 몸으로 감행하는 남자를 그린다. 오픈하우스 제공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ㆍ김미정 옮김

오픈하우스 발행ㆍ368쪽ㆍ1만4,000원

20세기 범죄소설의 대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캐릭터의 세계’다. ‘리플리 증후군’(현실을 부정하고 허구를 진실로 믿고 상습적으로 거짓말과 행동을 일삼는 인격 장애)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리플리’ 시리즈를 비롯해 사이코패스의 머릿속을 담담하게 그린 ‘심연’, 새로운 여성상을 그린 ‘캐롤’까지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구나 상상하지만 아무도 현실에서 실행하지 않았던 수많은 판타지를 기꺼이 감행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작가가 ‘리플리’ 시리즈를 쓰던 1960년 집필한, ‘리플리’의 속편 격인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집착, 그 광기와 지질함을 온 몸으로 감행하는 남자를 그린다.

철저한 계획 하에 하루하루를 사는 젊은 과학자 데이비드 켈시. ‘장래의 노벨상을 받을’만큼 전도유망한 그는 애나벨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고 오직 그녀와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재미없지만 연봉이 두둑한 섬유회사에 취직해 고향을 떠난다. 무릇 어설프고 진정 어린 마음이 비극을 만드는 법. 데이비드는 이 원대한 포부를 고백하지 않은 채 열심히 돈을 모으고 애나벨은 그 사이 제럴드라는 지질한 남자와 결혼해버린다.

데이비드가 택한 방법은 분리된 두 개의 세상을 사는 것이다. 그는 윌리엄 뉴마이스터라는 가명으로 둘만의 집을 마련하고 주말이면 그곳에서 애나벨과의 달콤한 생활을 상상한다. 첫 눈에 애나벨에게 반했던 데이비드는 그만큼 애나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그녀의 취향을 상상하며 모차르트 음반을 사고, 입맛을 상상하며 새우와 가지를 뺀 요리를 한다.

‘밤이면 그는 2층 더블 침대에서 그녀와 같이 잠들었다.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다 몸을 돌려 그녀를 꽉 끌어안으면 그의 욕정은 상상 속 여체의 무게를 느끼며 여러 번 절정에 도달하고도 그 이상으로 치솟았다.’

‘계획대로’ 철저히 분리됐던 두 세계는 데이비드가 지속적으로 애나벨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 편지를 보게 된 제럴드가 데이비드를 찾게 되며 엉키게 된다. 총을 들고 경고하러 ‘주말 집’을 찾은 제럴드를, 데이비드는 계단에서 밀어 죽이게 되고 경찰을 찾아가 뉴마이스터의 이름으로 이 ‘사고사’를 신고한다.

한데 아무도 모르는 ‘주말 집’을, 제럴드는 어떻게 단번에 찾았을까. 평소 데이비드를 흠모했던 이웃집 여자 에피는 데이비드와 비슷한 편집증을 갖고 있었고, 주말마다 어딘가로 떠나는 그를 염탐했다. ‘다시 혼자가 된’ 애나벨과 결혼하기 위해 이제 데이비드는 뉴마이스터가 자신임을 철저히 숨겨야 하고, 에피는 이런 데이비드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주말 집’을 팔고, 직장을 바꾸며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데이비드는 애나벨이 상부(喪夫) 후 몇 달 만에 다른 남자와 재혼하고, 이사한 새 집에서 에피가 죽음을 맞으며 다시 한번 반전과 마주하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애나벨이 그랜트 바버와 결혼하게 내버려둬야지, 한 번 더 뻔한 실수를 하게 둬야지, 오래가지 않을 테니. 그런데 재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바보처럼 일정이 뒤로 밀린다.’

스토커 같은 데이비드를 내치지 못하는 애나벨, 애나벨이 자신을 사랑할 거라 확신하는 데이비드, 데이비드를 향한 희망 없는 사랑을 지속하는 에피. 처절한 사랑을 통해 작가는 묻는다. 순정과 집착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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