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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자동차 전쟁

입력
2018.01.07 15: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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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동차 전쟁’이라는 용어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친환경기술 등을 활용해 미래 자동차산업을 주도하려는 각국의 기술경쟁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인다. 하지만 전엔 자동차 수출입 관련 통상마찰에 주로 쓰였다. 그런 통상마찰이 가장 격렬했던 건 1990년대였다. 자동차와 가전 등 ‘메이드 인 재팬(Madein Japan)’이 세계시장을 휩쓸던 때다. 이미 미국의 자부심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록펠러센터의 소유권이 일본인에게 넘어갔고, 일본 경제가 미국을 점령한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일본은 1941년 진주만 공격을 시작으로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가 처참하게 패했다. 하지만 반세기 만에 일본 상품과 자본이 미국을 휩쓸게 되자, 미국에서는 또다시 일본에 공격당했다는 피해의식 같은 게 작동했을 것이다. 1995년 정점에 이른 미일 자동차협상을 둘러싼 두 나라 간의 대립과 마찰에 대해 ‘자동차 전쟁’이라는 용어가 흔히 쓰인 배경이라고 본다. 용어의 사회심리적 배경과 별도로, 당시 협상은 실제로 전쟁 못지않게 격렬했다.

▦미키 캔터 당시 USTR 대표가 나선 미국은 체면 팽개치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1994년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600억달러 중 3분의 2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서 발생했지만, 일본의 자동차 수입비율은 4%에 불과하다며 핏대를 올렸다. ‘슈퍼 301조’를 거론하고, 자동차와 부품 수입 목표비율을 정해 무조건 충족시키라고 일본을 압박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일본 통산상은 더 이상 고분고분한 일본인이 아니었다. 그는 “외산 부품 구입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라는 요구는 WTO 규정과 국제법 위반”이라며 ‘결사항전’을 천명해 국민적 인기를 모았다.

▦자동차협상과 맞물린 환율전쟁도 극한으로 치달았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래의 엔고 추세를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일본 수출을 전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조치였다. 마침내 엔화 가치가 전후 최고 수준인 달러당 79엔 선까지 치솟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시작된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미국이 우리나라의 대미수출 1, 2위 품목인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을 핵심 의제로 집중 거론했다고 한다. 미국의 요구가 ‘전방위 전쟁’으로 이어진 과거 미일 자동차협상 때와 비슷하다. 우리 측의 선전(善戰)을 바랄 뿐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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