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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민주공화국 완성은 지방분권에 달려있다

입력
2017.0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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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 국민대통합위원회 주관 국민대토론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관리사무소장, 입주자대표회의, 입주민 중 누가 아파트 단지의 주인이냐고 물어봤다. 모두 입주민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대통령, 국회, 국민 중 누가 나라의 주인이냐는 물음에는 답이 다양하게 갈렸다. 어쩌면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는 관리사무소장 격인 대통령이 주인행세를 하는 것을 문제삼지 않았던 주권의식 부족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주권의식 제고에는 분권 확대가 필수적이다.

분권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대통령의 권한이 장관 등에게 수평적으로 분산되는 수평적 분권과 대통령의 권한, 즉 중앙의 권한이 지방으로 분산되는 수직적 분권이다. 수직적 분권을 흔히 지방분권이라고 하며 지방자치와 유의어로 사용된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은 수평적 분권과 수직적 분권이라는 두 수레바퀴로 지탱되고 굴러간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절대왕권이 수평적 수직적으로 분산되는 과정을 근대화라고 규정했고, 그 결과로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우리의 경우 1987년 대통령 직접선거, 1991년 지방의회 도입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서구식 근대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30여 년 전에야 비로소 수평적 수직적 분권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 짧은 기간 우리사회는 19세기 유럽이 겪은 일련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밟아 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시작으로 중앙집권적 권한이 수평적 수직적으로 이양되는 과정을 통해 유럽 대륙 곳곳에서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의 완성은 그로부터 최소 100년 이상 걸렸다는 것이 통설이다.

올해 한국사회 최대 화두는 대통령 선거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헌법 개정도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헌법이 개정된다면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온 수직적 분권, 즉 지방분권 논의가 더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그런데 수직적 분권을 추진함에 있어 유럽식 지방자치를 취한다면 우리는 관리사무소장이 주인행세를 하는 사례를 몇 번은 더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유럽식 지방자치의 정당성은 국가의 배려와 양보를 통한 지방분권에 있으며 모든 권한은 본래 국가 귀속이었지만 필요에 따라 지방으로 이양한다는 논리다. 특정 상황에 따라 지방이양이 불필요할 수도 있으며, 오히려 중앙집권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2014년 국가총사무 재배분 조사에서 지방이양 대상 사무로 정해진 1,737건 중 2016년 9월 현재 113개만 이양 확정됐는데 그만큼 지방분권이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식 지방자치는 본래 지방에 귀속된 권한을 지방으로 되돌려 주자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절차가 불필요하다. 즉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미국식 지방자치인 주민자치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향후 개정될 헌법에 아예 지방자치 관련 인사, 조직, 재정 등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담아 지방자치법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자치헌법을 강조하는 철학의 기저에는 지방고유권설이 깔려있다. 모든 권한은 본래 지방에 귀속되는 것이고 필요에 따라 중앙에 이양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산도 지방 위주로 먼저 편성한 후 나머지를 보조금 형태로 중앙에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과격한 예시지만 이 같은 근본적 논의를 통해서라도 지방분권에 대한 국민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말 촛불집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도 따지고 보면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입주민으로서 이 나라의 주인임을 깨달은 것이다. 아울러 주권의 본래 소재지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통해 중앙정부보다는 영토와 국민을 직접 공유하고 있는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도 일깨워야 할 것이다.

올해는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지에 대한 소위 주인 논쟁이 무성할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주주와 노동자가 주인임을 천명할 것이고, 지방자치 현장에서는 지방이 주인이라는 주장이 더 활발해질 것이다. 분권의 두 수레바퀴 중 하나인 수평적 분권과 관련된 논의에만 치우치지 말고 수직적 분권과 관련된 논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태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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