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민석의 성경 ‘속’ 이야기] 원죄 대가인 노동과 출산... 하나님 긍휼로 '고통 속 보람'이 됐다

입력
2018.02.03 10:00
19면
0 0
휴고 반 데어 고스의 15세기 작품 '인간 타락'.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가 사과를 집어 들고 있다. 뱀은 이브를 움직여야 아담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휴고 반 데어 고스의 15세기 작품 '인간 타락'.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가 사과를 집어 들고 있다. 뱀은 이브를 움직여야 아담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 인류의 조상이지만, 자신은 무성생식으로 탄생하신 분. 인류 최초의 패셔니스타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누드집에 등장하시는 분. 공처가의 시조이며, 정원사로 일하면서 만물에 이름을 지어주시던 시인, 미스터 아담을 소개한다.

성경을 따르자면, 아담은 신이 만드신 최초의 인간이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신 후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드신, 단 하나의 존재다. 그래서 형제자매는 물론 엄마조차도 없었다. 참 외로웠을 것 같다. 가끔 동물원에는 태어나자마자 어미로부터 분리되어 인공 포육실에서 자라는 아기 동물들이 있다. 제 어미의 따스한 품과 보살핌의 개념조차 모르는 아기들인데, 아담도 어쩌면 그와 같았을 것 같아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파라다이스 ‘에덴’ 안에 놓여졌지만,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이브 이후 아담은 남자가 됐다

하나님도 같은 생각이셨나 보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고는 한 사람을 더 만드셨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에게 성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게 되었다. 그래서 꽤 많은 성서학자들이 아담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으며, 인간이 또 하나 생긴 후 사람은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이 생겼다고 본다. 정말로 외로웠었는지, 아담은 태어난 또 하나의 사람을 보고 이렇게 기뻐 외쳤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창세기 2:23) 엄마의 따스함을 경험하지 못했던 결핍은, 자기 곁에 하나님이 놓아주신 여자 이브를 통해 충족될 수 있었다. 엄마를 떠난 모든 성인은, 그래서 그토록 자기 짝을 찾는가 보다. 인간은 어려서도 커서도 서로의 살을 비비고 느끼며 훈훈하게 살고 싶어 한다.

아담이 무성생식으로 태어난 반면, 이브는 일종의 ‘체세포복제’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나게 되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이브는 아담의 신체 일부를 떼어다가 만들었다 한다. 아담이 이 여인을 보고 자기의 뼈요, 살이라고 외친 것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인 것이다.

성서의 이 기록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금 나와 연을 맺고 있는 배우자는 나의 몸이어야 한다는 것.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너무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말기를. 어떤 이유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살다가 배우자를 잃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독신주의자도 있다. 그래도 지금 내 옆에 배우자나 연인이 있다면 한 몸처럼 아끼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창세기 2:24)

라파엘이 그린 '아담에게서 이브를 창조'. 배우자를 한 몸처럼 아끼라는 의미다.
라파엘이 그린 '아담에게서 이브를 창조'. 배우자를 한 몸처럼 아끼라는 의미다.

인류 최초의 부부 사이가 흥미롭다. 아담은 인류의 시조이면서 동시에 공처가의 시조이시기도 하다. 아담과 이브가 부부가 된 후, 큰 사건이 벌어진다. 하나님이 절대 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어느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것이다. 이 사건에는 에덴동산의 뱀이 연루되어있는데, 이 뱀이 이브더러 먹으라고 꼬드겼다. 왜 아담이 아니라 이브였을까? 에덴의 동물들은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 집을 잡으려면 누구 먼저 잡아야 하는 지를. 예상대로 이브가 넘어오자 아담은 찍 소리 않고 이브가 건네 준 열매를 베어 먹었다. 인류 최초 가정의 주도권은 남편이 아닌 아내가 쥐고 있었고, 우리는 그 후손이란다

원죄 이후 가장 큰 죄는 살인

신학에서 이 일은 ‘원죄’ 사건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이해되어 왔다. 인간 세계에 죄악이 최초로 들어오게 했다는 사건 말이다. 이때부터 세상에는 어그러진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다. 이 일을 두고 많은 이들은 그 ‘열매’가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그 열매 안에 어떤 독극물이라도 들어있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떤 심오한 상징이 있는 것인지. 하지만 그 답은 영원히 우리가 알아낼 수 없을 수도 있다.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첫 인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는 것이다. 신에 대한 불순종이 정확한 죄목이며 불행의 탄생이었다.

그 열매를 먹는 죄를 짓자마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창세기 3:7) 인류 최초의 패션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노출과 부끄러움, 가리기와 들추기 사이의 절묘한 에로티시즘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첫 패션 아이템은 무화과 나뭇잎이었다. 수많은 아담과 이브 성화 속에, 늘 잎이 달린 나뭇가지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그들이 죄를 짓지 않았으면, 우리는 지금 다 벗고 살고 있을까? 상상을 하자니, 난 죄인임이 확실한 것 같다.

아담과 이브에게는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자식이 있었다. 가인이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을 일으켜 아벨을 죽이고 만다. 이 사건은 아담과 이브가 불순종하여 죄를 지은 후 곧바로 소개된 이야기다. 인류 타락 이후, ‘살인’을 인간 죄악의 대표로 소개하는 것이다. 인류가 죄인이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것, 바로 전쟁이다. 성경뿐만 아니라 역사도 같은 증언을 한다.

18세기 스코탱의 판화 '타락, 에덴에서 쫓겨나 가정을 꾸리고 일을 하는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의 아담과 이브를 묘사하고 있다.
18세기 스코탱의 판화 '타락, 에덴에서 쫓겨나 가정을 꾸리고 일을 하는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의 아담과 이브를 묘사하고 있다.

본래 아담의 직업은 정원 관리사였다.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창세기 2:15)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도와 작명가로도 일했다.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창세기 2:19) 그러나 죄를 지은 후, 그의 직업은 농사꾼으로 바뀐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창세기 3:17) 죄를 짓기 전, 에덴 땅은 노역하지 않아도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었었다. 같이 죄를 저지른 여자 이브에게도 그 대가가 따랐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창세기 3:16) 남자가 땀 흘려 일해야 먹고 사는 것, 여자가 배 아프게 자녀를 낳는 것이 모두 죄의 대가라고 한다.

원죄 지은 이를 돌보신 하나님

그런데 참 이상하다. 죄의 고통이라고는 하지만, 남자는 사실 힘겹게 일하고 그 결과로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릴 때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여자도 찢어지는 고통으로 아기를 낳지만, 가정을 보살피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에 엄마는 너무나 큰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이 인간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한 것이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결과로 말한다. 인간을 에덴에서 쫓아내시면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행동하셨다. “주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다.”(창세기 3:21) 죄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인간이 참 안쓰러울 수밖에. 덮어보려 했지만 그들이 고안한 건 부실한 나뭇잎이었다. 인간의 난감한 처지를 하나님은 친히 오셔 덮어주려 하셨다. 인간의 문제이지만 하나님이 나서 주셨다.

사실 죄인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가장 소외된 자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복음 9:13)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