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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파 40년 무능 부패에... '젊은 중도' 마크롱, 다크호스로 부상

입력
2017.04.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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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새로운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느낌이에요.”

미국에 살다가 2005년말 파리로 돌아온 사업가 악셀르 테상디에(35)는 귀국하면서 파리 전체에 침울한 기운이 가득하다고 느꼈다. 그가 파리를 떠난 사이 대형 테러가 두 차례 발생했고,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약진했다. FN의 돌풍이 우려스럽지만 그렇다고 실정(失政)을 거듭하는 사회당을 지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오직 앞으로 나가겠다고 외치는 정치인 에마뉘엘 마크롱(39)이 나타났다. 테상디에는 그가 ‘진보주의’라고 말한 정책들이 마음에 들었고 지금 그의 신생정당 ‘앙 마르슈(전진)’를 지지한다. 스타트업 기업 스타일로 꾸며진 파리 앙마르슈 본부 사무실에서 독일 슈피겔과 인터뷰한 테상디에는 “마크롱은 공포심을 확산시켜 지지자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쓰지 않는 유일한 대통령 후보” 라며 “그는 프랑스에 희망을 만들어내고 낙관주의를 퍼뜨리는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중도세력 대표주자로 떠올라

프랑스의 향후 5년을 좌우할 대통령 선거 첫 관문인 1차 선거가 23일로 다가온 가운데, 프랑스에서 첫 30대 대통령이 나올지 주목된다. 앙 마르슈 대선 후보인 마크롱은 1977년 12월생으로 마흔이 채 되지 않았다.

프랑스 북부 아미엥에서 태어난 마크롱은 의사 부모 슬하에서 자라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전형적인 엘리트이지만 정계에선 신인이다. 세계적 금융회사인 로스차일드 투자회사에서 기업 합병전문가로 일하다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2014년 경제산업장관으로 깜짝 발탁하면서 정ㆍ관계에 들어섰다. 당시 그는 ‘좌파 정부의 우회전 깜빡이’로 꼽히는 35시간인 주(週) 근로시간 연장과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추진했고,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해 8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회당 정권에서 일했으면서도 사회당원은 아니었던 마크롱은 “우파의 생각에 대해 수용할 준비가 돼있는 좌파”(가디언) 를 자처한다. 경제정책은 주 35시간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도 유연성 확대를 주장해 우파의 요구를 수용했고, 자발적 실업자ㆍ농민들에 대한 실업급여를 확대하고 현행 연금제도를 유지하는 등 사회정책은 좌파노선에 가깝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구하지만, 공화당과 같은 과격한 방식이 아니라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같은 ‘제3의 길’을 추구한다는 평가다. 지지자들의 이념 성향도 넓다. 좌파로는 사회당 거물 정치인인 들라노에 전 파리시장이, 우파로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지난 1월 15일 그의 지지율은 17%(여론조사 기관 IPSOS)로 FN의 마린 르펜 후보(26%)와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 후보(25%)에 이어 3위였지만, 피용의 부인 채용스캔들이 불거진 후 그의 표를 흡수, 지지율이 껑충 뛰었다. 11일 현재 23%(오피니언 웨이)로 르펜(24%)과 선두를 다투고 있다. 프랑스 대선은 1차 선거 1, 2위 득표자가 겨루는 결선투표(5월 7일)에서 최종 결정되는데, 이 경우 마크롱은 62% 지지로 38%인 르펜을 제압할 것으로 예측된다.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최초의 30대 대통령이자 1958년 프랑스 5공화국 출범 이래 원내 의석이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마크롱 돌풍…뉴노멀의 프랑스적 표현

전문가들은 아웃사이더인 마크롱을 향한 프랑스인들의 환호에 대해 1981년 이래 번갈아 정권을 맡아온 사회당과 공화당의 끝없는 정쟁, 올랑드로 대표되는 사회당의 무능과 피용이 상징하는 공화당의 부패 등에 대한 실망이 결합된 결과로 풀이한다. 2012년 대선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중도파 정치인(프랑수와 바이루ㆍ9.13%)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호감이 마크롱이라는 참신한 이미지의 정치인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거의 40년간 좌우파를 바꿔봐도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니 마크롱과 같은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것”이라며 “피용 스캔들 여파로 중도 우파표를 많이 가져왔고, 올랑드 정권에서 일했지만 사회당원이 아니어서 정권 실패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점도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마크롱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부패하지 않은, 젊고 신선한 이미지가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나 브렉시트처럼) 모든 국가의 정치가 예측 불가능해졌고, 마크롱의 선전은 이런 뉴 노멀(New Normalㆍ새 질서)의 프랑스적인 표현”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마크롱이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 관저)으로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좌파들은 올랑드의 시장주의적 노동개혁에 대한 마크롱 책임을 거론하고, 우파들은 반대로 마크롱의 노동개혁이 지나치게 미온적이라고 비판하는 등 좌우 협공을 당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마크롱 지지자들의 표심이 유동적이라는 것. 브루노 코트레 파리 정치대 교수는 “극좌파들은 좌파당 장 뤼크 멜랑숑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정했고, 중도 좌파들은 마크롱을 지지하기로 정하는 등 좌파 성향 유권자들의 마음은 정해졌다”며 “결선투표까지 간다면 마크롱은 중도 우파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지켜야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왜 르펜은 마크롱을 성원하는가’라는 기사에서 “친 마크롱 유권자들의 표심은 매우 유동적”이라며 “마크롱 지지자 중 절반가량이 1차 투표에서 실제 그에게 투표할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마크롱이 결선에 진출해 르펜과 겨루더라도 2002년 대선 당시 FN 장 마리 르펜의 당선을 막기 위해 우파 공화당 자크 시라크 후보에 투표를 유도했던 좌파 정당들의 이른바 ‘공화주의 협약’과 같은 정략적 지지는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1차 투표에서 공화당 피용 후보를 찍겠다는 유권자 중 2차 투표에서 르펜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몇 달 사이 25%에서 30%로 높아졌다고 폴리티코는 소개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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