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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장영자 이철희 구속(5.4)

입력
2018.05.0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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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4일 장영자(오른쪽) 이철희 부부가 구속됐다. 대검 중수부의 사실상 첫 '작품'이었지만, 그들은 단 한 명의 고위공직자도 기소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자료사진
1982년 5월 4일 장영자(오른쪽) 이철희 부부가 구속됐다. 대검 중수부의 사실상 첫 '작품'이었지만, 그들은 단 한 명의 고위공직자도 기소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자료사진

1981년 신설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이듬해 5월 4일 장영자 이철희 부부를 구속했다. 명동 암시장 같은 데서 불법으로 80만 달러를 모았다는,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였다. 하지만 주 범죄는 어음사기였다. 81년 2월부터 82년 4월까지 그들은 건설사 등 자금 사정이 안 좋은 기업 100여 곳에 사채를 빌려주고 채권의 2~9배짜리 어음을 챙겨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다시 사채를 돌리는 수법으로 부를 불렸다. 어음을 발행한 기업에는 부도 협박으로 추가 거래를 종용하며 어음 액수를 불려나갔다. 그들이 유통시킨 어음 총액은 7,111억원. 국립대학 등록금이 50만원이 채 안 되던 때였다.

38세 주범 장영자는 전두환 부인 이순자의 삼촌인 이규광(61년 육군 준장 예편)의 처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부인 차용애가 고종사촌언니여서 김 전 대통령을 사촌형부라 부를 수 있는 사이였다. 사건 이전 그의 행적은 별로 알려진 바 없다. 목포의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해 대학을 졸업했고, 한 차례 결혼과 이혼을 한 뒤 79년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의 당시 유정회 국회의원 이철희와 재혼했다. 한 마디로 그의 인맥은 박정희ㆍ전두환 정권의 정ㆍ관계와 국회로 이어져 있었고, 그는 그 인맥을 영악하게 활용했다. 기업에 “우리 돈은 특수 자금이니 비밀을 지키라”는 식의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들의 범행과 연이은 어음 부도로 사채ㆍ금융시장이 얼어붙었고, 상장사를 포함 여러 기업이 도산했다. 5공 정부는 단자(短資ㆍ사채)시장에 긴급자금을 투입하고, 기업 대출금리 및 법인세 대폭 인하를 골자로 한 ‘6ㆍ28 경제 활성화 조치’를 단행했다. 은행장 두 명과 기업인, 이규광 등 31명이 구속됐다. 장영자는 15년 형을 선고 받아 92년 가석방됐지만, 94년과 2000년 두 차례 사기 사건으로 각각 실형을 살다 2015년 출소했다.

몇몇 실세 공직자와 유학성 당시 안기부장, 권정달 민정당 사무총장 등이 경질 및 자진사퇴 형식으로 시차를 두고 옷을 벗었다. 하지만 사기 방조나 뇌물 등 혐의로 중수부가 기소한 고위 공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장영자의 청담동 집에서 ‘물방울 다이아’ 등을 턴 3인조 강도 일당을 체포한 경찰관 8명이 각 50만원의 사례금을 받았다가 파면된 일은 있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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