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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헨리에타 랙스(8월 1일)

입력
2017.08.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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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세포’ 헬라 세포의 주인 헨리에타 랙스가 1920년 8월 1일 태어났다. Henrietta Lacks Legacy Blog
‘불멸의 세포’ 헬라 세포의 주인 헨리에타 랙스가 1920년 8월 1일 태어났다. Henrietta Lacks Legacy Blog

미국 버지니아주 로어노크(Roanoke)의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가 1920년 8월 1일 태어나 51년 10월 4일 별세했다. 그는 그 시기 미국 남부 흑인 여성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며 다섯 아이를 낳고, 31세에 자궁경부암으로 숨졌다. 하지만 그의 암세포는 특별했다. 연구진이 채취해 배양한 그의 세포는, 짧으면 며칠 밖에 못 사는 일반적 인체 세포와 달리 무서운 속도로 생장하며 거의 24시간마다 두 배로 증식했다. 연구진은 그의 이름과 성 첫 두 글자를 따 ‘헬라(Hela) 세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52년의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서부터, 각종 항암치료제와 에이즈ㆍ파킨슨 병 연구, 화장품 유해성부터 우주 세포반응 연구에까지 헬라 세포는 인간의 몸을 대리했고, ‘불멸의 세포’라 불리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메릴린드 주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병원은 당시 흑인들을 무료 진료해주는 드문 병원이었다. 대신 의료진은, 관행처럼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 그들의 병원균과 세포를 의학 연구에 활용했다. 헬라 세포도 그렇게 탄생했다. 70년대 초 헬라 세포가 워낙 많이 증식되고 오염되면서, 원 세포를 식별할 수 있는 표지가 필요해졌다. 의료진이 랙스의 가족에게 연락한 게 그 무렵이었다. 의료진의 설명을 들었지만, 세포가 뭔지도 몰랐다는 가족은 “공짜 건강검진을 해준다”는 말에 만족해 혈액을 제공했다. 그들이 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76년 ‘롤링 스톤’의 기사 등을 통해서였고, 세상이 헬라 세포의 사연을 알게 된 건 저널리스트 레바카 스클루트(Rebecca Skloot)의 2010년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김정한 등 옮김, 문학동네) 덕분이었다.

헬라 세포가 의학 연구윤리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1990년대부터였다. 백혈병 환자 존 무어가 자신을 진료한 UCLA 병원을 상대로 건 소송에서,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병원 환자의 폐기대상 혈액과 조직 샘플은 환자의 소유물이 아니며 환자 또는 유족에게 해당 세포 연구로 발생한 상업적 이익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한 건 1990년 7월이었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2013년 랙스의 유족을 만나 생체 시료 이용 및 헬라 세포 게놈 데이터 공개에 관해 합의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리더인 국립보건원장 프랜시스 콜린스는 그 해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서 “데이터 공개에 참가자의 허락을 구하는 건 그들이 단지 실험대상이 아니라 동반자임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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