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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쟁이 아들, 아빠만 없으면 '이쁜~짓'

입력
2015.08.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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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이 아빠는 아이돌보미 선생님을 기다린다. 아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주는 도우미 아주머니다. 이 선생님이 집에 와야 이 아빠가 집을 나설 수 있다. 근처에 아들 봐줄 사람이 없는 이 아빠는(그러니까,‘서울 여자랑 결혼’에 실패(?)한 이 촌놈 아빠는) 복직 전에 ‘아들을 남한테 맡기느니, 아침에 부지런을 더 떨어 출근 길에 직접 어린이집에 맡길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서 아침부터 치러야 할 한판 ‘전쟁’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른들이 밥 먹을 동안 유아용 식탁에도 비교적 꽤 긴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아들. 흘리는 음식이 적어 외식이 한결 수월해졌다.
어른들이 밥 먹을 동안 유아용 식탁에도 비교적 꽤 긴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아들. 흘리는 음식이 적어 외식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 아이돌보미 선생님과 바통터치를 한 뒤 출입처로 출근하면 이 아빠는 이젠 이 선생님의 카톡 메시지를 기다린다. 집 나선 뒤부터 아들이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2,3시간 가량의 상황이 압축돼 있는 서너 줄짜리 메시지다.

내용은 주로 집 나선 뒤 아들이 아빠를 얼마나 더 찾았는지(요즘 절대 이렇지 않는다. 복직 초기 얘기다), 응가는 어떻게 잘 했는지(최근 두 돌을 넘긴 뒤 스스로 변을 가리려고 한다), 밥은 많이 먹었는지(단맛에 눈떠 다른 게 보이지 않는 세 살), 기분 좋게 놀았는지(감정표현 만큼은 확실히 하는 아들놈), 어린이집 가는 길에 거미줄이나 개미, 신기한 벌레를 만났는지(10m 거리를 가는데 10분은 걸리는 것 같다), 어린이집 들어갈 때(아빠 손을 뿌리치고 달려 들어간다) 기분이 어땠는지 등등. 짧지 않은 문자 메시지가 아내와 함께 있는 3자 대화방에 뜬다.

“아침 밥 잘 먹고 요거트 맛있게 다 먹고 배도 몇 조각 먹었어요. 응가도 시원하게 잘하고, 재미있게 놀이도 하고 책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하네요. 신나게 하루 시작했어요~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오늘도 기분 좋게 잘 놀고 응가도 하고 어린이집에 갔어요. 말이 늘고 의사소통이 돼서인지 떼쓰는 일이 없네요^_^ 좋은 하루 되세요.”

대략 이런 식이다. 그런데 뭐, 밥을 잘 먹었다고?? 떼를 안 썼다고?? 이 자식이 내 자식 맞나 싶은, 이 아빠를 멈칫거리게 하는 대목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어린이집에 잘 갔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면 이 아빠는 아들을 머릿속에서 내려놓는다. 아들놈이 어린이집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친구들은 물론 형 누나들이랑도 잘 어울리고, 집에서는 그렇게 먹지 않는 밥도 혼자서는 잘 먹고, 낮잠도 2시간 넘게 푹 자고 일어나 신나게 뛰놀기 때문이다. 사실상 걱정할 일이 거의 사라진다. (이는 직접 관찰한 내용 + 아내의 이야기 + 쉬는 날 직접 등하원시키면서 담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 주말에 오가면서 마주치는 주변 애기 엄마들의 전언 + 어린이집 대화수첩 내용 + 아들이 마구 지껄이는 소리 등 다방면으로 취재한 것을 종합한 결과다.)

“변신 파~워”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아들. 한 생활용품 매장에서 유아용 변기에 앉아서도 그걸 외치더니 그날 실제로 변을 보기 시작했다. 아들이 변신했다.
“변신 파~워”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아들. 한 생활용품 매장에서 유아용 변기에 앉아서도 그걸 외치더니 그날 실제로 변을 보기 시작했다. 아들이 변신했다.

어린이집 덕분에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들놈은 이 아빠의 머리가 한가한 때를 틈타 다시 등장한다. ‘숟가락과 포크를 쥐고 혼자서 밥 반찬을 떠먹는다는 게 사실일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일단 울상부터 짓고 보는 놈인데, 떼를 안 써? 그 참 이상하네….’ 머리를 채우는 것은 주로 이 아빠가 직접 본 아들 모습과 남을 통해 듣는 모습의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의문들이다. 선생님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안 봤으니 알 수가 있나’하는 단순한 생각도 있고, 그게 사실이라면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하는 생각들이다.

그런데 최근 이 의문들이 말끔히 해소됐다. 이 아빠는 얼마 전 해외 출장 차 열흘 정도 집을 비웠는데, 그 전후로 보름 정도 올라 와 계시던 장모님의 말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정서방, 아들 잘 키웠네 잘 키웠어. 혼자서도 밥 잘 먹고, 잘 놀고, 이쁜 짓은 또 어찌나 많이 하는지. 덕분에 얼마나 즐거운 시간 보냈는지 모르네.” 이 이야기에 순간 우쭐해 하던 이 아빠는 꼬꾸라질 뻔 했다. “어이쿠, 그런데 제 아버지 집에 오니까 태도가 돌변하네, 돌변해.”

장인, 장모님의 이야기는 손주가 제 또래들이 하는 것들은 스스로 웬만큼 해내다가도 엄마 아빠만 보면 어리광을 부리며 헝클어지는, 엄마 아빠가 곁에 있을 때와 없을 때를 구분해서 행동하는 ‘이중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한창 그럴 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들을 너무 끼고 살았나’, ‘너무 얼러 키웠나’하는 후회가 든다. 또 ‘역시 애들은 좀 떼 놓고 키워야 한다’는 한 대선배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부친, 모친에 쓰는 친할 ‘친(親)’자는 나무(木) 위에 서서(立) 멀리서 지켜보는(見) 사람이라는 뜻인데, 가까울수록 사랑할수록 끼고 살지 말라는 뜻이지.”틀린 말 같진 않은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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