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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유미의 조작은 어떻게 가능했나

입력
2017.07.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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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홀대론에 기대 정치한 국민의당

증언조작 사건에 지도자들 책임 안져

왜 당을 만들었는지도 한번 돌아보길

정치와 관련해서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작은 경험이 하나 있다. 1985년 2월 제12대 총선 당시 우연히 들렀던 집 근처의 유세장. 때마침 한 후보자가 막 유세를 시작했는데 내용은 이랬다. “지금 이 지역은 경제가 너무 나빠서 주민들이 먹고 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다른 지역으로 갈 예산까지 끌어와 반드시 우리 지역 주민들이 잘 살게 하겠습니다.”

같은 말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 유세였지만 아무리 들어도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 후보가 경제가 어려워 주민들이 살기 어렵다고 한 바로 그 지역이 실은 상대적으로 잘 사는 동네였던 것도 그렇지만 그런 주민을 위해 더 가난한 지역으로 갈 수도 있는 예산을 끌어오겠다는 것은 파렴치한 지역이기주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생각하니 그게 바로 정치인이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였다. 현실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누군가에게 피해 의식을 잔뜩 심어준 다음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로 자신이 선택돼야 한다는 그런 방식.

국민의당이 태어나 오늘에 이른 과정이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32년 전 그 후보가 지역구 주민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주입했다면, 국민의당은 호남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들의 호남홀대론은 놀랍게도 호남을 홀대한 주체로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정파를 거론하기보다 노무현-문재인이라는 참여정부 세력을 겨냥했다.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컸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참여정부가 호남을 실제 홀대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런 주장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다. 거기에 맞춰 정동영 천정배 등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인사가 가세하고 박지원 안철수가 중심 인물로 나서 국민의당은 지난해 4ㆍ13총선에서 창당 2개월 만에 38석을 얻었다.

지난해 총선 당시에 비해 묽어지기는 했어도 올해 대선 과정에서 박지원 당시 대표는 “문재인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을 골로 보냈다”며 호남 차별을 다시 거론했고 그보다 훨씬 참신할 것 같은 초선의 김경진 의원 역시 노무현 정부 때 호남 출신 고위 공무원이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의 호남홀대론 집착은 호남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를 선택하고서야 제동이 걸렸지만, 이들이 지난해 총선에서 뜻밖의 성과를 안겨준 호남홀대론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씨가 마치 독재정권 시절의 공작정치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제보 조작을 통해 문준용씨의 취업 특혜를 주장한 것은,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무작정 책임을 덮어씌운 다음 잘못했다고 몰아붙이는 국민의당의 호남홀대론 부풀리기 문화와 닿아 있다. 참여정부 세력이 호남을 소외시키고 무시했다는 주장으로 반감을 조장하고 키우며 반사이익을 얻는 네거티브 전략에 취해 있다 보니 증언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보다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지금 국민의당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선거에서 진 것만으로도 위기인데 제보 조작 사건으로 앞날을 모색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져 있다. 박지원 전 대표가 문준용씨 취업 특혜를 같이 파헤치자며 특검 실시를 반사적으로 요구하고 안철수 전 대표 등 이 정당의 지도자 누구도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국민의당에 대한 작은 기대마저 저버린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당이 존폐 위기에 처했는 데도 당원 한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국민의당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한 것은 그런 점에서 타당한 지적이다.

국민의당은 여전히 제3당이지만 지지도는 땅에 떨어져 있다. 당장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 때문에 난리가 나 있지만 이 당에 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그러자면 창당 이후 내세웠던 주장, 했던 행동, 그리고 모여든 사람들까지 모든 것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왜 당을 만들었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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