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성형 대국’이다. 1만명 당 성형 건수가 한 해 131건으로 세계 1위(국제미용성형학회 2011년 자료)다. 성형외과 의사 수는 2,054명(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 2013년 자료)으로 역시 인구 대비 1위다. 성형 대국의 이면에는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의사가 수술대 10여개를 옮겨가며 공장처럼 수술을 하는 성형외과, 성형수술을 받다가 숨지는 환자 등이 그렇다. 한국일보는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직장을 잃고 2년 10개월째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사례를 통해 무분별한 성형수술이 주는 고통을 전하려고 한다. 또한 성형외과 광고의 허와 실도 짚어본다.
“저는 성형수술 부작용 때문에 직장을 잃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긴 39세 여성입니다. ‘성형수술 부작용 환자’이니 가명은 한 글자씩 따서 ‘성부자’ 정도로 해두죠. 지금 상태요? 뭐부터 말씀 드려야 할지. 광대뼈가 조각 나 있고, 턱뼈는 울퉁불퉁한 게 만져지고, 얼굴 좌우 비대칭이 심해요. 멀쩡한 치아를 4개나 뽑았고, 입을 크게 벌릴 수 없어 음식물은 가위로 잘라 먹어요. 아, 입 천장에 구멍이 나서 음료수를 마시려고 하면 코로 새어 나와요. 정신과에서는 대인기피, 우울증, 불면증,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하네요. 친구들도 안 만난 지 꽤 됐어요.”
20일 서울 신길동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성부자씨는 2년 10개월간 성형 부작용과 싸운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 경험담은 성형 부작용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수술한 성형외과와의 법적 다툼 등 두 종류의 싸움에 대한 것이었다.
성씨는 수술 전까지 서울의 한 학원 원장이었다. 매달 등록을 대기하는 학생이 10여명인 소위 ‘잘 나가는’ 학원이었다. 매일 학생, 학부모와 상담을 하면서 사람을 대하다 보니 외모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30대 중반을 넘겨 얼굴 살이 빠지면서 입이 튀어나와 보이는 게 불만이었다.
그러다가 한 포털사이트의 성형 관련 카페를 알게 됐다. ‘한 번의 성형으로 새 삶을 찾게 해줄 것 같은’ 광고들로 채워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성형외과 외부 상담실장’이라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외부 상담실장은 성형외과에 환자를 소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였다. 외부 상담실장은 성씨에게 서울 강남의 A성형외과를 소개했다. 병원에 처음 찾아간 날 상담실장은 “수술적인 방법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수술 견적을 뽑았다. “고객님은 돌출 입 수술만으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어요. 광대뼈를 좀 줄이고, 사각턱을 깎아내면 이목구비가 좋아 훨씬 예쁠 거예요.” 이렇게 얼굴윤곽 3종 세트를 포함해 크고 작은 수술 5가지를 받는데 들어간 비용은 1,250만원(부가가치세 별도)이었다.
2015년 9월 25일, 운명의 날이었다. 상담실장은 “원장님이 알아서 잘 해주실 것”이라고만 했을 뿐 수술 방법이나 위험성, 부작용 등은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다. 수술 전 성씨가 “시뮬레이션이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원장은 상담실장에게 화를 내면서 “너는 환자에게 무슨 설명을 한 것이냐. 데리고 가서 다시 설명하고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 분위기에서 더 설명을 요구하기도 어려워 그냥 수술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성씨의 이야기다. 성씨는 자신이 받은 돌출 입 수술만 해도 위 아래 송곳니를 빼고 입천장과 아래턱 뼈를 잘라낸 뒤 둘레를 조금 갈아내고 다시 집어넣는 수술로 상당히 위험한 수술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
성씨는 아파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다가 수술 3일 후 주사기로 환자용 유동식을 입에 넣었는데 허연 유동식이 코로 흘러 나왔다. 성씨는 너무 놀라 성형외과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드레싱(소독)해야 하니 일단 병원으로 오라”고만 했다. 성씨는 그날부터 매일 드레싱을 하러 성형외과에 갔고, 12월까지 입 천장 구멍을 메우는 수술을 세 번이나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의사는 “자연적으로 치유되니 기다려보자”는 말 뿐이었다.
성씨는 병원을 믿을 수 없어 지인들에게 전문가를 수소문했다. 대학병원 치과, 구강악안면 외과 등 ‘잘 본다’는 곳은 모두 찾아갔다. 그가 받은 진단을 간추리면 이렇다. “입 천장 뼈가 다 녹아 내렸고, 치아 또한 모두 빠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광대뼈가 조각나 얼굴 전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 턱 뼈를 과도하게 잘라내 씹는 기능에 문제가 있고 통증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뼈를 이식하더라도 입 천장 구멍을 메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만 들었다.
답답한 성씨는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지금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묻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수술을 받은 지 10개월이 된 시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올리고 댓글을 보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조금만 무리해도 극심한 통증에 까무러치는 일이 반복돼 학원 일도 그만 둔 상태였다. 그런데 며칠 후 A성형외과의 자문 변호사가 연락을 해왔다. “당장 글을 내리지 않으면 민형사상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성형외과 측은 인격권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허위 사실을 인터넷 공간에 퍼뜨려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의 인격권을 침해했으니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은 2016년 10월 17일 ‘게시물이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사실을 왜곡해 의사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면서 성형외과 측의 신청을 기각했다. 성형외과의 항고에 서울고법은 올해 3월 성씨에게 게시물에 올린 다른 사람의 성형 부작용 사진 등 일부를 수정하라고 했지만 병원의 ‘전체 삭제’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성형외과가 성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됐다. 병원은 성씨의 글로 명예가 훼손됐으니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은 2017년 10월 병원의 주장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병원은 예약 환자들이 성씨의 글을 보고 성형수술을 취소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수술 취소 환자들의 명단을 손해의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씨는 수술 취소 환자들과 일일이 통화해 병원 측의 주장이 허위라는 내용의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병원 측의 법적 공세를 막아낸 성씨는 반격을 시작했다. 올해 1월 성형외과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2년 정도 진행된 소송이 힘들었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환자를 아무 것도 모르는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병원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한 “병원이 이름만 바꾸고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면서 “추가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소송에서 꼭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성씨는 3년 전 성형수술을 받지 않았을 때의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수술 전만 해도 못생기게 보이던 사진인데 지금 보니 예쁘네요. 왜 수술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픈 게 아니라면 미용성형 수술 하지 마세요. 의사들은 수술을 받아보지 않아 그 부작용과 통증을 몰라요.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요.”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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