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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하이트진로 ‘물 마케팅’ 맥주ㆍ소주 시장 휘어잡았지만…

입력
2017.08.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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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연 암반수’ 하이트로 히트

경영 일선 나선 지 2년 만에

전통 강자 OB맥주 따돌려

#2 진로 인수해 소주 업계서도 1위

그 사이 맥주 경쟁사서 치고 나와

맥스 등 제품 다양화 재미 못봐

#3 지배구조ㆍ일감 몰아주기 등 논란

재계 경영권 승계방식도 답습해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 하이트진로 제공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 하이트진로 제공

1993년 맥주 시장 만년 2위에 머물던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하이트’ 라는 신제품이 맥주 시장을 강타한다.

지하 150m 천연 암반수를 활용해 맥주를 만들었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물 마케팅’에 소비자들은 늘 선택하던 OB맥주 대신 하이트를 마시기 시작했다. 당시 OB맥주는 모 기업인 두산그룹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식음료 이미지에 한차례 타격을 받은 터라, 하이트의 깨끗한 물 마케팅은 더욱 효과를 발휘했다.

그 결과 하이트 맥주는 출시 3년 만인 1996년 시장 점유율 1위(43%)를 차지하며 OB맥주를 앞서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크라운맥주를 브랜드로 내세웠던 조선맥주가 맥주 시장에서 OB맥주(동양맥주)를 앞선 것은 1950년대 이후 처음이었다. 하이트 효과는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2006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어서며 맥주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다. 경쟁사였던 두산은 외환위기 여파와 맥주 시장 경쟁력 약화로 OB맥주 지분을 외국 자본에 매각하고 맥주사업에서 손을 뗀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하이트가 두산을 따라잡고 맥주 시장을 장악한다는 것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며 “하이트의 물 마케팅은 10년 뒤 소주 시장의 2차 물 전쟁으로 재연되는 등 주류 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맥주회사서 종합주류 회사로

하이트진로의 뿌리는 1933년 경기 시흥에 일본 자본에 의해 세워진 조선맥주주식회사다. 우리나라 최초의 맥주회사인 조선맥주는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 관리하에 있다가 부산 지역 민간 자본에 넘겨졌다.

박문덕(68) 하이트진로 회장의 선친인 고(故) 박경복 명예회장이 회사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1967년이다. 박 명예회장은 이후 서울 영등포 공장 증설, 도산한 한독맥주 마산공장 등을 인수하며 회사를 키웠으나 30년간 OB맥주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그러나 박문덕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1990년대 초반부터 맥주 시장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박 회장은 사장으로 취임한 지 2년 만에 신제품 하이트를 출시하며 OB맥주를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맥주 시장 주도권을 완전히 쥔 2005년에는 진로를 인수하며 소주 시장으로도 사업 영역을 넓혔다.

소주 시장에서도 박 회장의 마케팅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박 회장은 2006년 출시된 두산의 소주 ‘처음처럼’을 겨냥해 소주시장에서도 물 전쟁의 포문을 연다. 당시 두산은 처음처럼에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했다는 점을 앞세워 진로의 소주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이에 박 회장은 당시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고 “두산의 ‘처음처럼’은 전기 분해로 만든 소주이지만, 진로의 ‘참이슬’은 대나무 숯으로 정제한 소주”라는 점을 강조하며 제2차 물 전쟁을 시작했다.

10년 전 맥주시장에서 패했던 두산도 이번엔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두산도 “얼마나 깨끗하지 않은 물을 사용하면 4번씩이나 거르겠느냐”며 반격을 시도했고, 출시 당시 6%에 불과했던 처음처럼의 시장점유율을 2009년 13%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50% 안팎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던 진로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두산은 2009년 소주 사업부를 롯데에 넘기며 주류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A 주류사 관계자는 “1~2차 주류업계 물전쟁의 최종 승자는 사실상 하이트진로의 박문덕 회장”이라며 “1세대 대형 주류 업체 중 주인이 바뀌지 않은 업체도 하이트진로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1980년대 크라운맥주를 만들던 조선맥주의 서울 영등포공장 전경. 조선맥주는 1993년 신제품 하이트를 출시하고 50년 만에 OB맥주를 추월하는데 성공했다. 하이트진로 제공
1980년대 크라운맥주를 만들던 조선맥주의 서울 영등포공장 전경. 조선맥주는 1993년 신제품 하이트를 출시하고 50년 만에 OB맥주를 추월하는데 성공했다. 하이트진로 제공

들토끼 쫓다가 집토끼 놓친 하이트진로

국내 최대 종합주류회사로 성장한 하이트진로의 최대 고민은 회사 모태인 맥주 사업의 부진이다. 소주 사업에 진출해 시장 1위 자리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사이 맥주 사업은 OB맥주(AB인베브)에 다시 1등 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현재 맥주시장 점유율은 OB맥주 60%, 하이트진로 35% 정도로 OB맥주에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상태다.

잘 나가던 하이트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 것은 회사의 역량이 소주 시장으로 분산된 영향이 크다. 2005년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주류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 5년간 양사의 통합영업을 제한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 때문에 두 회사의 합병 시너지는 쉽게 발휘되기 어려웠고, 시장별 이슈에도 각기 대응해야 했다.

특히 진로 인수 후 소주 시장에서 벌어진 2차 물 전쟁에 회사 역량을 집중하느라 하이트는 맥주 시장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OB맥주를 인수했던 사모펀드 KKR은 ‘카스’에 마케팅을 집중해 2012년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하이트에 밀린 지 16년만이었다.

하이트의 전략 실패도 아쉬웠다. OB맥주가 맹렬한 추격을 시작하던 2006년과 2010년 하이트는 맥주 시장 수성을 위해 ‘맥스’와 ‘드라이피니시 d’를 내놨지만 이는 마케팅 역량을 분산시켰을 뿐이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다양한 맥주 브랜드 출시가 결과적으로 하이트의 시장 우월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하이트진로를 견제하기 위해 공동 마케팅을 벌이는 등 불리한 상황에서 싸움을 벌인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밑그림 그려진 후계구도…편법 승계 논란도

하이트진로의 후계 경영 구도 중심에는 박문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40) 부사장이 있다. 지난 2015년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일선에 나선 그는 회사 지분 보유에서도 확실한 경영권 승계 후보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박 부사장은 맥주 냉각기 제조ㆍ판매 업체인 비상장 회사 ‘서영이엔티’의 지분 58.44%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서영이엔티는 하이트진로의 지주회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지분 27.66%를 보유한 2대 주주이기도 하다.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최대주주는 박문덕 회장(29.49%)이다. 박 회장 보유 지분 이동에 따라 회사 경영권 향배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겠지만, 하이트진로의 향후 지배구조는 ‘박태영→서영이엔티→하이트진로홀딩스→하이트진로’로 윤곽이 드러난 상태다.

다만 박 부사장이 그룹 일감을 지원받는 비상장 회사를 앞세워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섰다는 점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룹 일감을 지원받는 소규모 계열사를 여러 방법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세운 뒤, 그 계열사 지분을 2~3세에게 넘겨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는 ‘재계 경영권 승계 공식’이 하이트진로에서도 그대로 재연된 셈이다. 서영이엔티는 2010년 하이트홀딩스 지분 24.66%를 보유한 삼진인베스트먼트를 합병하면서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올랐다. 박 부사장은 이에 앞서 2007년 서영이엔티 지분을 인수하며 이 회사 대주주가 됐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서영이엔티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서는 과정에서 부과된 법인세 314억원은 이미 납부한 상태로 편법증여와 관련이 없다”며 “국세청에서 편법증여로 보고 부과했던 327억원의 증여세도 위법한 것으로 지난해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났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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