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평선] 필로티는 죄가 없다

입력
2017.11.16 16:38
30면
0 0

현대식 아파트를 창안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 건축의 기본이 된 다섯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옥상 정원과 파노라마 창, 열린 평면, 자유로운 내부설계 등 요즘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양식을 그는 100년 전에 제시했다. 나머지 한 가지 원칙이 건물 1층을 비워두는 필로티 구조다. 20세기 초반 폭발적 인구증가로 고민하던 파리시의 도시계획을 맡은 뒤 해결책으로 필로티 개념을 고안했다. 직장 건물 필로티에 차를 세워놓고 일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필로티에 주차하는 일상이 르 코르뷔지에가 꿈꾼 도시인의 모습이다.

▦ 필로티 설계가 국내에서 처음 적용된 곳은 1967년 서울 한남동의 힐탑아파트다. Hill-top이라는 이름 그대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한남동 언덕 꼭대기에 지상 11층 높이로 지은 고급 외국인아파트였다. 이후 정부가 입주자 편의를 위해 아파트 필로티 공간을 휴게시설, 회의실 등 주민공동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02년 주택의 주차기준이 대폭 강화된 데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1층을 기피하는 소비자 기호에도 맞아 원룸과 다세대주택의 대표적 형태로 자리잡았다.

▦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기둥이 거의 주저앉은 건물 사진이 퍼지면서 필로티 구조가 손가락질 받고 있다. 벽이 없는 필로티 건물은 중량의 대부분이 기둥에 쏠린다. 상하와 좌우진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수평으로 가해지는 압력까지 더해져 기둥 상부에 균열이 가고 건물이 무너질 수 있어 지진에 약한 설계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필로티 설계가 아닌 법의 허점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 2015년부터 3층 이상 모든 건축물에 대해 내진 설계가 의무화됐다. 필로티 건물도 3층 이상이면 당연히 적용 대상이지만 소급이 안돼 현재 80% 정도가 내진 설계가 안돼 있다. 특별 지진하중에 맞게 필로티 건물이 설계됐는지 당국이 검사를 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미 지어진 건물에 대해선 구조와 자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내진 성능 보강을 위한 비용과 기술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필로티 건물 실태 파악과 내진 보강작업을 서둘러 입주자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