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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개헌특위 실종되나

입력
2014.02.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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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논의에 대해서 현재 정치권은 두 개의 대척적인 입장으로 갈라져 있다. 하나는 역사청산과 민주정치 재정립론이고, 다른 하나는 민생우선에 반한다는 '블랙홀'론이다. 권력집중에서 분산형 정부구조로 전환을 역설하는 역사청산의 대표주자 자리에 민주당의 전병헌 원내대표가 서 있다. 그리고 개헌논의를 시작하면 다른 민생정책을 다 빨아들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블랙홀'론의 기수 격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다.

전병헌 대표는 지난 1월5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두 개의 큰 아젠다로 남북 국회 회담과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제시했다. 두 가지 다 초당적 의제다. 그리고 며칠 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연두회견을 통해 "개헌은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의 공약이었다"며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반대하는 여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블랙홀 언급이 그대로 블랙홀의 효과를 냈다. 친박계의 좌장이라는 서청원 의원이 개헌론의 전도사역을 해 온 이재오 의원을 공박했고 이어 최경환 원내대표도 경제가 먼저라며 개헌추진 반대를 밝혔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여야 의원 118명이 이름을 걸었고 그중 56명이 새누리당 소속이다. 개헌이 부인할 수 없는 초당적 아젠다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데도 여권에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개헌논의가 '동작 그만' 상태다. 전병헌 대표는 회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강창희 국회의장을 찾아가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요청했다. 그러나 2월 임시국회가 중반을 넘어선 지금까지 개헌특위 설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야의 벽을 넘어 공론화해 가던 개헌론을 일거에 싹쓸이하듯 날려 보내버린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이 1인에 집중되고 독점된 권력의 모습이다. 개헌론을 잠재운 그 독점 권력을 혁파하려는 것이 바로 개헌의 당위라는 아이러니인 셈이다. 전병헌 대표는 개헌의 당위성에 대해 "대통령선거에서 승자독식이라는 비합리성을 이제 고쳐야 하며, 또 집권세력 내에서도 1인 독점권력의 비민주적 폐해를 청산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한국 정치의 주요 특성 중 하나가 독점권력을 낳는 카리스마적 권위다. 그것에 따라 순치된 국민들에게도 흔히 강력한 통치자를 희구하는 습성이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었다. 해방 후 정당정치 1세대가 항일독립운동 출신이라는 점에서 카리스마적 권위가 시작됐다. 이승만 신익희 조병옥 등이 그랬다.

제2세대는 쿠데타를 통한 총구의 카리스마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해당한다. 공포통치의 화신이었다. 그 이후 제3세대 역시 반독재 저항운동을 벌이다가 사형선고나 목숨 건 단식투쟁으로 얻은 민주화 투쟁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누렸다. 김영삼 김대중이 여기에 속한다. 대통령제와 독점적 권력은 이 같은 카리스마적 권위에 의해 유지돼 왔고 일정한 정당성도 인정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인터넷 문화 세대에게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더 이상 먹히지 않으며 또 그럴만한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고만고만한 정치인들이 경쟁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 지금까지 인정돼 온 대통령들과 동질적인 권위를 가진 정치인은 나오기 어렵다. 그런 마당에 선거에서 이겼다 해서 특정 정당이 모든 국가 집행권을 독차지하고 그 집단에서도 1인이 꼭대기에 앉아 독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현행 헌정제도를 그대로 존속시켜서야 되겠는가.

개헌을 반대하는 여권은 그로 인한 정치적 태풍이 싫은 것이지만, 결국 여야가 합의하는 공통분모만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소모적 논란을 최소화하면 된다. 그래도 어렵게 추진하는 개헌이라서 여야의 최대공약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4년 중임제와 대통령권력의 분산을 필수내용으로 국민기본권의 확대, 경제민주화 조항의 강화, 지방분권 확립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오면 수용하겠다는 원칙을 밝혀왔다. 그러면서 여야의 개헌 논의를 봉쇄하는 '블랙홀'론을 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당도 지레 겁먹지 말고 자율적으로 야당과 함께 개헌논의에 나설 때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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