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 대화파인 류길재 前 장관
임기 내내 독자 목소리 못 내고
洪 장관도 핵실험 후 제 역할 못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자금의 북한 핵개발 전용 의혹과 관련해 말 바꾸기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자 정부 안팎에선 ‘통일부 장관의 잔혹사가 재연되는 것 같다’는 말이 회자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통일부는 남북관계 주무부처로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청와대의 결정을 떠받드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역할을 찾지 못한 채 스스로 입지를 좁혀온 탓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인 류길재 전 장관은 온건 대화파로, 취임 초부터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적극적인 유화책을 모색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청와대가 대북 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틀어 쥐다 보니 통일부 차원의 목소리는 번번이 묵살됐다. 2014년 말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류 전 장관이 직접 평양에 특사로 가겠다고 손을 들었으나 끝내 성사되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류 전 장관은 당시 사석에서 “솔직히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는 말로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후 류 전 장관은 갑작스레 경질됐고, 홍 장관이 후임으로 들어왔다.
홍 장관 역시 취임 초에는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의 선 순환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청와대 외교안보실을 거치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입안한 이도 그였다. 홍 장관은 실제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지뢰도발 이후 8ㆍ25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정부의 독자제재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중단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남북관계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박지원 무소속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 프로에 출연해 “(개성공단 자금의 전용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방부 장관에게 맡겨두고, 통일부 장관은 최후 보루에 서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협상을 해야 한다”며 “청와대의 강경한 압력을 받아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 통일부 장관은 자격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통일부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데는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 군 출신 인사가 득세하는 것도 한 이유란 지적이다.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만을 강조하는 안보 논리 외에 대화와 협상 등 유연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수장인 김관진 실장과 국가정보원의 이병호 원장이 군 출신이다. 외교안보 부서 출신의 전직 관료는 “정책 결정을 하는 데 여러 관점의 목소리가 전달돼야 하는데 현 정부에선 그런 다양한 논의 구조 자체가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결정되는 데 통일부도 처음부터 동의를 했느냐는 질문에 “정책 결정 과정 속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와 불협화음으로 비칠 수 있는데, 적어도 이번 결정 과정에서는 공감대가 많았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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