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여 혼란 이후 또 리더십 공백
정쟁만 거듭 ‘잃어버린 2개월’우려
美금리 인상 눈앞ㆍ中사드 보복에도
공직사회는 복지부동 만성화 조짐
지난해 말 우리나라 조선업의 ‘남은 일감’을 뜻하는 수주 잔량은 17년 만에 다시 일본에 추월 당했다. 2008년 일본의 2배에 달했던 한국의 조선 수주 잔량이 이렇게 된 데엔 정부가 구조조정 등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10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통해 빅3(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인수ㆍ합병(M&A)이나 고강도 산업 재편 등이 없는 ‘맹탕’ 처방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 다음 달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4,400억원을 갚지 못하는 등 결국 한국 경제 전체가 위험해질 것이란 ‘4월 위기설’까지 확산되고 있다. 또 다시 밑 빠진 독에 국민의 혈세가 허비될 판이다. 수도권 대학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공직 사회의 ‘직무유기’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조선업 구조조정”이라며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폭탄’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장 15일(현지시간)로 예정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도 한국 경제엔 ‘발등의 불’이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한미간 금리격차 축소→외국자본 유출→국내 금리인상→가계부채(1,344조원) 상환부담 증가→소비위축→내수침체’의 경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 미국 정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도 걱정거리다. 만약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원화가치 절상 압력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대선 정국을 맞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철회를 압박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 수위도 더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소비자의 날인 15일 중국에서 사업하는 우리 기업들이 철퇴를 맞을 가능성도 우려된다.
문제는 당장 대응해야 할 경제 현안이 이처럼 산적해 있는 데도 정부의 ‘복지부동’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있다. 지난해 9월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이어지고 있는 공직사회의 ‘개점휴업’ 상황이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과 조기대선 분위기에 장기화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부처의 한 과장은 “차기 정부의 국정 기조에 따라 정책 방향이 크게 바뀔 것”이라며 “공들여 준비한 업무가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 고위 공무원도 “지금은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고 털어 놨다.
유일호 경제팀, 리스크 관리 최선을
환란 직후 초당적 경제협의체 주목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일호 경제팀이 우선 리스크 관리에 주력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차기 정부가 집권 후 ‘연속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중장기 경제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조선ㆍ해운ㆍ철강 등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 차이와 관계 없이 추진할 수 있는 과제”라며 “구조조정은 국내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중장기 필수과제인 만큼 과도 정부가 차기 정부를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미국 금리인상 등에 따라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정부가 유동성 공급 등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정부에 대한 대선 주자와 정치권의 ‘뒷바라지’도 중요하다. 경제 문제에선 정당과 이념을 초월한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경제는 화초와 같아서 정치가 울타리를 쳐 줘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가 실종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대선 과정에서 인기영합 정책이 나오며 시장경제 원칙이 훼손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초당적 협의체를 구성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도 주목된다. 한 전직 관료는 “1997년 11월 외환위기 발발 직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당시 당선인과 김영삼 정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같은 기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명으로 구성됐던 당시 비상경제대책위는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경제정책 결정을 주도하며 과도 경제팀 역할을 수행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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