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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24 04:40
수정 : 2017.07.01 15:44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만화적 영웅의 시대… 상상에는 브레이크가 필요 없다

등록 : 2017.06.24 04:40
수정 : 2017.07.01 15:44

<16>‘영웅들의 신’ 스탠 리

#1

할리우드 장악한 슈퍼 히어로

마블코믹스 만화에서 탄생

국내 관객 10년간 6,600만명

#2

초능력 얻고 지구를 구하지만

‘인간다움’ 고뇌하는 캐릭터

현대 과학기술의 명암 표상

#3

신기술엔 윤리적 딜레마 동반

만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될 때

슈퍼 영웅들의 고민 돌아봐야

할리우드를 장악한 슈퍼 영웅들. ‘어벤져스’의 주인공들인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토르, 블랙 위도우 등은 만화가 스탠 리의 마블코믹스에서 창조됐다. 소니픽쳐스 제공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본 프랜차이즈 영화는 무엇일까? 원작 소설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은 ‘해리 포터’ 시리즈? 아니면 무려 50년 넘게 관객이 누적되어 온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답은 마블코믹스의 슈퍼 영웅 영화들이다. 놀랍게도 처음 국내에 개봉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으나, 누적 관객은 대한민국 총 인구를 넘어섰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올 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까지 모두 15편의 영화가 동원한 총 관객은 6,600만 명(영화진흥위원회)을 훌쩍 넘는다.

세대를 넘는 청소년들의 영웅상

마블코믹스는 DC코믹스와 함께 미국의 양대 만화출판사로서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 두 곳에서 창조된 슈퍼 영웅들은 사실상 전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성장기의 우상으로 각인되며 세대를 뛰어 넘는 공감과 추억을 이룬다. 마블코믹스의 대표적인 캐릭터는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엑스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판타스틱4 등이며 DC코믹스의 대표 주인공들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이들 슈퍼 영웅들이 등장하는 실사 영화가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둔 뒤, 할리우드의 영화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거대한 가상 우주를 공통 배경으로 삼는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전성시대가 된 것이다.

이 영웅들은 40대 중반 이상 세대에게도 친숙하다. 한국의 장년 세대는 청소년기에 이들 만화 속 슈퍼 영웅들을 TV 연속극으로 접했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보자기를 두르고 슈퍼맨처럼 날았고,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가 방영된 다음 날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상체 근육에 잔뜩 힘을 주며 헐크로 변신했다. DC코믹스가 슈퍼맨이나 배트맨 등 이름값에서 앞서는 슈퍼 영웅들을 몇몇 거느리고 있지만, 전체적인 흥행세는 마블코믹스쪽이 단연 우세하다.

오늘날의 마블코믹스를 이룩한 인물이 바로 스탠 리이다. 그는 전 세계 만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으며 90세를 훌쩍 넘긴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과 테마파크의 전설이라면, 스탠 리는 만화 원작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창작 캐릭터들과 스토리의 거대한 가상우주를 창조한, 영웅들의 신과 같은 존재이다.

/헐크(위 사진)와 스파이더맨(아래 사진)처럼 마블코믹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감마선 노출이나 유전자 조작 거미 등 과학기술이 개입해 영웅적 능력을 갖게 된다. 마블코믹스 제공

/헐크(위 사진)와 스파이더맨(아래 사진)처럼 마블코믹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감마선 노출이나 유전자 조작 거미 등 과학기술이 개입해 영웅적 능력을 갖게 된다. 마블코믹스 제공

만화적 상상력이 미덕이 된 시대

스탠 리가 창조해 낸 환상의 본질은 곧 ‘만화적 상상력’이다. 만화적 상상력이란 말은 사실 지난 시대엔 냉소적인 뉘앙스를 지녔었다.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공상, 어린애 같은 철없는 발상일 뿐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망상 등등.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은 이런 만화적 상상력들을 끊임없이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상상력과 과학기술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가속하는 양상이다.

슈퍼 영웅 만화에 나오는 발상들은 하나같이 현실의 과학과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웬만한 SF소설보다 훨씬 개연성이 없다고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이나 헐크는 인간의 신체가 순식간에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설정이다. 그런 변이 자체가 생리학적으로 가능한지와는 별개로, 생물학적인 변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난다는 것이 고정관념이었다. 변이가 아닌 탈바꿈(변태)의 경우에도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거나 뱀이 허물을 벗는 과정은 몇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나노기술의 발달은 이런 변이가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는 상상을 어떻게 하면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실제로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상상에서 출발한 과학기술이 실현되었을 때 사회ㆍ문화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스탠 리의 마블코믹스 주인공들이 인기를 얻은 비결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 고뇌하는 인간다움을 지녔다는 점이다.

‘판타스틱4’(2005)에 카메오로 출연한 스탠 리. 슈퍼 히어로들과 그 창조자가 스크린 세상에서 함께 살아 숨쉰다.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웅을 고뇌에 빠트리는 과학기술

DC코믹스는 슈퍼맨처럼 압도적인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활약하는 스토리 중심인 반면, 마블코믹스는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있다는 평을 듣는다. 마블코믹스의 슈퍼 영웅들 상당수는 태생의 비밀에 첨단 과학기술이 개입되어 있다. 스파이더맨은 방사능을 쬔, 혹은 유전자 조작이 가해진 거미에게 물려 탄생했고, 헐크는 감마선 폭탄 실험 도중 강력한 감마선에 노출돼 괴물로 변신하게 됐다. 이들은 새로운 능력을 이타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휴머니즘을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들에게 닥친 운명에 괴로워한다.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이 슈퍼 영웅들은 사실 발달한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한편으로 그 폐해에 번민하는 현대 인류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이런 딜레마를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스파이더맨2’의 악당 옥타비우스 박사이다. 그는 물리학자로서 새로운 에너지 실험을 하다가 인공지능 칩이 척추와 융합되면서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원래는 위험한 실험에 이용할 기계팔을 몸에 부착한 것인데 과전류가 흐르면서 기계팔을 제어하는 인공지능 칩이 척추를 통해 두뇌까지 침투하고 말았다. 인공지능은 처음에 입력된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폭주를 계속했고 그 와중에 옥타비우스 박사도 기계의 의지에 굴복하여 악당인 닥터 옥토퍼스로 변신한다. 가끔씩 원래의 선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인공지능에 종속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파이더맨2’(2004)에 등장하는 닥터 옥타비우스. 과학자였으나 괴물이 되고 만 이 인물은 과학기술의 혜택과 폐해를 둘 다 안고 사는 현대인의 자화상과 같다. 콜럼비아트라이스타 제공

새로운 과학기술은 사회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과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항상 야기한다. 윤리적으로 명쾌하게 구분되는 흑백논리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78년에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시험관아기가 탄생했을 때에도 종교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 인공 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과연 아무런 탈 없이 잘 자라줄까?’ 하지만 이제까지 검증되었다시피 시험관아기 기술은 별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줄기세포를 이용한 단성생식은 어떤가? 시험관아기 기술로도 2세를 얻을 수 없는 세상의 많은 불임 부부들에게 줄기세포를 이용한 복제 기술은 새로운 복음이 될 수 있지만 아직 우리는 받아들일 사회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복제된 2세를 허용할 경우 나타날 부작용이나 사회적 파장들이 제대로 연구, 분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영원히 금지될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변수는 바로 21세기 세대이다. 이들은 만화적 상상력을 현실처럼 묘사한 여러 SF 콘텐츠를 접하며 자랐고, 실생활에서도 시시각각 변화 발전하는 과학기술 환경에 익숙하다. 21세기에 태어나 자란 세대는 앞으로 10년 정도면 사회의 중추 세력으로 편입된다. 과연 이들에게 만화적 상상력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 기성세대들처럼 터무니없는 공상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주인공이 될 근미래 세상은 과학기술을 수용하는 윤리적 잣대도 우리보다 더 유연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 때 아무쪼록 그들이 보고 즐긴 슈퍼 영웅들의 모습에서 고뇌와 성찰도 함께 본받기를 기원한다. 스탠 리가 슈퍼 영웅들의 아버지처럼 추앙받는 이유는 만화적 상상력의 화신으로 묘사한 동시에 늘 인간적 면모를 잃지 않는 휴머니즘을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만화적 상상력은 또한 윤리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인간적 영웅을 창조해 낸 만화가 스탠 리. 게이지 스키드모어 촬영. 위키미디어

스탠 리

1922년 12월 28일~. 미국의 만화작가. 스탠 리는 필명이고 본명은 스탠리 마틴 리버다. 뉴욕에서 루마니아 출신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어릴 때부터 배달원이나 사무보조원 등 다양한 일을 했으며, 17세에 고교를 졸업한 뒤 한 출판사의 만화사업부에 들어가 조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19세 때 회사 내 갈등이 생겨 편집장 대리가 되었다가 이내 수완을 발휘해 만화 부문 책임편집자 자리를 맡았고, 그로부터 30여 년 뒤 발행인에 오른다. 이 회사가 마블코믹스다. 창작뿐만 아니라 소속 만화가들을 잘 이끈 예술경영인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90세를 훌쩍 넘긴 지금도 마블코믹스 원작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팬들과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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