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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져봐야 맷집도 강해지고 더 큰 정치인 되는 힘 솟아”

입력
2018.06.27 04:40
수정
2018.07.03 02:4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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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낙선 DJ는 인동초 정신으로

한국 첫 수평적 정권교체 일궈

링컨도 실패 반복할 때마다

“앞으로 가고 있다” 자기 확신

낙선을 업그레이드 기회로 삼아

역사에 남을 국가 지도자 반열에

경기 고양시 사선거구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백상진 정의당 전 후보의 낙선인사가 담긴 현수막이 일산동구 일원에 내걸려 있다. 이종구 기자
경기 고양시 사선거구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백상진 정의당 전 후보의 낙선인사가 담긴 현수막이 일산동구 일원에 내걸려 있다. 이종구 기자

6ㆍ13 지방선거에서 수 차례의 낙선을 딛고 당선된 오뚝이들이 있다. 이들은 패배의 쓴 잔을 마셨지만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다시 일어났기에 결국 축배를 드는 날이 왔다. 쓰라린 약을 잘 소화하면 오히려 강해지는 낙선의 역설인 셈이다. 민주주의 역사가 성숙하고 선거를 통한 수평적 권력 교체의 경험이 쌓일수록 낙선의 긍정적인 면도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 가운데서도 더불어민주당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의 정치 역정은 단연 돋보인다. 송 당선인은 8전9기 끝에 이번 선거에서 당선증을 손에 쥐면서 불굴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992년 처음 선거에 나선지 26년 만이었다. 보수의 아성인 지역 장벽에도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한 결과였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도 4수 끝에 30년 보수정당 철옹성을 무너뜨렸다. 김경수 당선인은 2012년 19대 총선과 2014년 경남지사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한 끝에 사상 첫 민주당 소속 경남지사가 되는 기쁨을 맛봤다.

이들 말고도 네 번째 도전했던 정상철 강원 양양군수 당선인 등 이번 지방선거는 낙선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당선인들이 유독 많았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전 제주지사 후보 낙선인사 현수막. 김영헌 기자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전 제주지사 후보 낙선인사 현수막. 김영헌 기자

2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결과 4,028명이 당선의 기쁨을 누렸지만, 5,284명은 패배를 경험했다.

선거에서 패배한 이들에게 정치학자들은 ‘낙선이 향후 정치 여정의 터닝 포인트(전환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져봐야 맷집도 강해지고, 자신도 되돌아보게 된다”며 “이를 통해 유권자들과의 소통 면을 넓히고 정치적 감각도 키우다 보면 큰 정치인이 되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낙선 경험이 향후 역량을 발휘하는데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긍정론을 폈다. 최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 다 대선 패배를 경험한 뒤 이를 디딤돌로 삼아 국정을 잘 운영했다”며 “반면, 대선 실패 경험이 없는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은 끝이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사에는 낙선을 이겨내고 국가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 업적을 남긴 이들이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번의 대선 패배 등 6번의 낙선 경험이 있다. 본인 스스로 “나처럼 많이 낙선한 사람도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동초(忍冬草)’라 불린 참을성으로 1997년 한국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여러 번의 낙선 끝에 대통령이 된 것도 유명한 사례다. 그가 낙선에 굴했다면 노예 해방 선언을 통해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낙선 이후에도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노력을 펼쳤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민들이 언젠가는 자신을 알아줄 것이란 믿음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러 번 실패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힘은 국민에 대한 믿음이었다”며 “국민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업그레이드 하는 시기로 삼는다면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선거 패배 때마다 “낙선의 경험은 쓰라리지만, 항상 국민의 의사를 하늘같이 받들면 국민들이 도울 것”이라고 자신과 주변을 독려했다. 링컨도 낙선을 반복할 때 “나는 뒤로 가지 않는다. 천천히 앞으로 가고 있다”고 자기 확신을 했다.

‘선거에서 떨어지면 패가망신 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선거를 거듭하며 민주주의의 역사가 쌓이고 체제가 안정될수록 이는 옛말이 된다는 지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폴리티컬 로스(Political Loss)’ 이론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미국 출마자들은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음 기회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87년 민주화 이후 여야가 세 번이나 바뀌는 걸 보면서 ‘지금 떨어져도 정치 경험을 쌓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긍정의 인식을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 지형이 ‘승자독식’의 틀에서 벗어나 낙선자도 꿈을 품고 희망을 볼 수 있는 분위기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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