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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사전] 뇌섹남

입력
2015.09.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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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의 한 장면.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의 한 장면.

“아름다움은 피부 깊이일 따름이다”라는 영국 격언이 있다. 외모 혹은 미모란 결국 피상적이고 일시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널리 퍼진 일화 중에 버나드 쇼와 이사도라 던컨 사이의 대화가 있다. 던컨이 쇼에게 애를 만들자면서 “내 얼굴과 당신의 머리를 물려 받은 아이” 운운하자 쇼가 “아니오. 내 얼굴과 당신의 머리를 물려받은 아이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라고 대꾸했다는 것이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던컨이 그런 제안을 했다는 전거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격언이나 일화는 통하지 않는다. 유치원에서부터 선생님들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거나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거듭 가르쳐 왔지만, 우리 대부분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체험적으로 잘 깨닫고 있다. 일본 인기 걸그룹 AKB48은 히트곡 ‘사랑하는 포춘쿠키’에서 이러한 평범한 통찰을 노래한다. “성격 좋은 애가 좋다고 남자는 말하지만 겉모습이 어드밴티지.” 통찰력이 아주 좋은 한국 젊은 여성들은 패션, 화장, 성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소비 성향과 미적 감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상반되는 상황들을 놓고 보자면, 뇌가 섹시한 남자를 뜻하는 뇌섹남이란 단어는 마치 정-반-합의 변증법적 총괄로 보인다. 레토릭한 차원에서 뇌섹남은 ‘oxymoron’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모순 어법, 형용 모순, 당착 어법 등으로 번역되는 ‘oxymoron’의 대표적 사례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제목 ‘침묵의 소리’라든가 이순신 장군의 명언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등이다. 그 밖에도 사례는 많다. 달콤한 슬픔, 작은 거인, 무지의 지, 리빙 데드, 동그란 네모, 급하면 돌아가라,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등.

그런데 과연 뇌섹남의 구체적인 특징이 무엇인가는 선명하지 않다. TV 등에서 뇌섹남이라고 하는 이는 연예인 중에서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지식인 중에서 예능감이 뛰어난 사람도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지적 능력이라는 게 주로 외국 유명 대학 졸업장 등과 같은 외적인 스펙이거나 어려운 수학 문제를 술술 푸는 ‘학교 공부 머리’거나 외국어 구사 능력 등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뇌섹남이란 그저 ‘연예인+엄친아’를 뜻한다는 얘기인가.

일부 언론 보도에서 강조하는 뇌섹남의 특징 중 하나는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능력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비틀어 말한다면, 지적으로 들리게끔 말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인터넷에는 뇌섹남처럼 말하는 테크닉 내지는 팁을 정리해 놓은 게 떠다니고 있기도 하고 이런 소재로 책도 출판되어 있다. 또 뇌섹남의 다른 특징으로 제시되는 것이 유머 감각과 배려하는 태도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뇌섹남은 결국 슈퍼맨이란 얘기가 되는데 아무나 뇌섹남이 될 수는 없다. 뇌섹남이란 말은 단지 텅 빈 기표인 것에 그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십 몇 년 간의 추세를 보면, 뇌섹남은 서로 다른 세 계열의 남성 인간형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에서 나온 것 같다. 하나는 몸짱, 짐승돌 등의 계열, 다른 하나는 돈짱, 갑질 등의 계열, 나머지는 초식남, 삼포 세대 등의 계열이다. 그렇다면 뇌섹남은 일종의 고스톱 판에서 광을 팔고 있는 것일까. 내가 살고 겪은 바에 의하면, 소위 지성미는 광 중에서도 비 광에 해당한다. 그 자체로는 절대 팔지 못한다. 한국에서 버나드 쇼는 결코 뇌섹남이 될 수 없다.

젠더 불안과 계급적 불만에 빠진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겨우 ‘된장녀’와 같은 단어를 만들어내서 엉뚱한 데에다가 성차별적이고도 계급적인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또 4%도 안 되는 지분으로 거대 그룹을 지배하면서 갑질을 하고 있는 한국의 ‘된장 재벌’들은 급할 때만 국민을 찾는다.

만약 오늘날 뇌섹남이 일정한 사회적 실체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한다면, 뇌섹남이란 말은 약간은 위안거리가 된다. 한국 여성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자를 보거나 고르는 데 있어서 글로컬한 균형 감각을 획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미 1960년대에 할리우드의 육체파 배우 라켈 웰치는 “마음이 성감대다”라고 한 바 있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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