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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래를 기획하는 연구개발예산 편성을

입력
2017.10.18 14:5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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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계 부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상위 1%의 부자들이 인류 자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부의 편재와 통신의 발달이 광범하고 대규모적인 테러를 야기한다는 진단도 있다. 기술발달의 속도와 그 귀결점이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은 속속 기계로 대치되고 있어 소외의 심화도 우려된다.

삶의 질 향상、불평등 해소、소득재분배 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포용적 성장’에 더욱 관심을 두고, 기술발전의 성과를 함께 누릴 이념과 제도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관한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와 토론을 강화하며, 새 시대에 맞는 사상을 제시하고 실천함으로써, 열매를 고루 나누는 세상을 창출해야 한다. 2017년 유엔 총회의 주제가 ‘사람을 근본으로(Focusing on people)’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여가가 확대된 세상에서는 ‘문화적 감성’이 더욱 중요한 경쟁요소가 될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에서 각국의 승패가 결정되며 최후의 승부처는 문화산업이다”라는 드러커(Drucker)의 발언처럼, 문화산업은 높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와 국가브랜드의 핵심적 요소이다. “정보통신기술(ICT), 플랫폼, 문화콘텐츠 등 신산업성장을 촉진시키는 혁신형 경제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경제 각료의 발언이 며칠 전 보도되었는데, 이러한 기획이 성공하려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분야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유네스코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은 2013년에 세계 최대의 문화상품 수출국이 되었고, 평균 7.5%의 수출액 성장률을 기록하던 우리의 문화상품은 지금 중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어찌 “사드 사태”가 이유의 전부이겠는가?

1960년대에 가나와 한국은 소득수준과 경제구조가 같았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의 국민소득은 가나의 20배가 넘으니, 문화전통과 사회제도가 격차의 핵심 요소일 것으로 판단된다. 인간은 높은 정신세계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매슬로우(Maslow)에 의하면 인간은 ‘자아실현의 욕구’나 ‘존경의 욕구’와 같은 고차원의 정신적 요소에 의해 창의력을 자극 받고 또한 숭고한 행동을 취한다. 그래서 인문사회적 자산이 인류와 국가 발전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 되는 미래를 준비하려면 삶을 설계하고 그 가치를 디자인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기초연구비를 확대함으로써 성장동력을 확충하겠다는 방침은 환영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인문사회 분야의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새 빌딩의 주춧돌을 놓으려고 문화재를 허무는 격이다.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연구개발예산의 4% 수준이고, 순수연구에의 지원은 2%도 안 된다. 최근 5년간 교육부의 학술연구지원에서 과학기술 분야는 평균 8%씩 늘었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오히려 0.7%씩 줄었다. 그래서 학문 간 균형을 회복하려면, 교육부의 인문사회분야 예산을 올해보다 20% 이상 늘려야 옳다. 우선은 학문 각 분야에서 고루 높은 수준의 성과가 축적돼야 하고, 그 이후의 ‘협업’을 통해 ‘융합’이 달성되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과학기술 영역의 ‘선도형’ 분야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면, 당해 영역 내 ‘추격형’ 분야 지원이 과도하지 않게 조정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예산은 장기적 안목으로 편성해야 한다.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아름다운 삶과 사회를 구현하려면 인문사회 분야의 지원을 총체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엄연히 기초학문의 한 축을 이루는 영역을 홀대하는 것은 ‘사람 중심 정책’을 거스르는 일이다. 내년에도 인문사회 분야 지원을 늘리지 않는다면 시대 추이와 국정운영 방침에 어긋난다. 발상을 전환해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고, 원대한 미래를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위행복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ㆍ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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