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주희
문화연구자

등록 : 2017.11.10 14:23
수정 : 2017.11.10 16:17

[2030 세상보기] #직장_내_성폭력_OUT

등록 : 2017.11.10 14:23
수정 : 2017.11.10 16:17

인테리어 기업 한샘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화제다. 이 일이 공론화되면서 현대카드, 한국씨티은행 등 유명 기업의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줄줄이 폭로됐다.

비단 여기서만 일어났을까. 문제를 촉발한 한샘은 인테리어 회사라는 건축업계 특성상 남성중심주의 문화가 있다고 했지만, 잇따라 터진 금융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정 업계를 떠나 남성중심 문화가 만연한 한국에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언젠가 터질 문제였다.

일터에서 성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이 가해자일 경우, 여성 동료에게 농담할 수 있고 희롱해도 된다고 여긴다. 그것이 남성문화의 문법이고, 친분과시이기 때문에 무엇이 폭력이고 문제인지 감이 없다. 한편, 회사는 사생활이라서 개입할 수 없다는 핑계로 성폭력 문제를 회피한다. 피해자에게 회사 이미지를 생각해서 참거나 퇴사하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와 개인 대 개인으로, 직장 밖에서, 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직장 내 성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남에도 공론화되지 못한 이유다.

직장은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곳이다. 직급에 따라, 성별에 따라, 나아가 지역에 따라 권력이 형성된다. 아무리 평등한 조직문화를 지닌 곳이라고 할지라도 결정권자는 있다. 그 결정권자가 함부로 자신의 특권을 내세워 동료에게 불편함이나 폭력을 행하지 않아야 하는데, 의외로 폭력을 제지할 규약이나 매뉴얼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남성이 상급자인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은 남성 선배-여성 후배라는 불균등한 젠더 권력까지 반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법정 의무교육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예방교육은 유명무실하다. 나는 다양한 노동 경험이 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교육을 제안하고 “뭐 그런 것까지 해야 하냐”는 답을 들은 적도 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또래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 밖에서 성평등 교육이나 성폭력 인식 교육을 듣는다.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은 듣지 않고, 필요한 사람이 품을 팔아 듣는다.

성희롱 예방교육도 이러할진대, 막상 일터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오히려 피해자에게 “왜 거절하지 않았어?”라고 묻는다. 피해자의 신변보호나 심리적 안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명백히 동료에 의한 2차 가해다. 피해자는 그 상황에서 여러 번 거절했을 것이다. 다만 가해자가 그것을 거절 의사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한국은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 후배를 붙잡고 모텔에서 자고 가라는 제안에 ‘아니오’(NO)라고 대답을 했는데 ‘좋아요’(YES)라고 알아듣는 이상한 나라가 아닌가.

한샘에서 일했던 피해자는 이 사건이 공론화되지 않았다면 홀로 긴 싸움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공감한 다른 여성들이 기업에 항의하거나 청와대에 수사 요청 청원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움직임으로써 상황은 달라졌다. 직장 내 성폭력은 언젠가 나도 경험했고, 경험할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기 때문이다. 1년 전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처럼 말이다. 이런 움직임은 더 이상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일터에서 피해자로 살아갈 수 없다는 여성들의 고발이다.

여전히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여성은 대기업처럼 이동할 부서도 없고 가해자와 같은 공간을 벗어나기도 어렵다. 그래서 부당한 상황에서도 참고 일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좀! 성희롱 예방교육을 듣고, 모르면 공부하고, 상대방이 불편하다고 하면 조심하고, ‘여성’이 아닌 동료로만 봐라. 여성도 편하게 일 좀 하자!!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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