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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드 축구

입력
2017.03.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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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의 이웃한 두 나라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축구로 전쟁까지 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에서 맞붙은 두 나라는 3차전까지 가는 격전 끝에 엘살바도르가 본선 티켓을 따냈으나, 이 과정에서의 유혈폭력 사태로 온두라스가 단교를 선언하고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 공군기지를 폭격하는 사태로 치달았다.‘100시간 전쟁’으로 불리는 축구전쟁으로 양쪽에서 5,000여명이 사망했다. 축구가 도화선이 됐지만, 배경에는 오랜 국경분쟁과 경제난을 호도하려는 독재정권의 여론조작이 있었다. 전쟁으로 온두라스라는 큰 시장을 잃은 엘살바도르는 이후 테러와 쿠데타, 내전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살바도르’‘로메로’가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내전의 참혹상을 그린 영화다.

▦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독일 서부전선 플뢰르 벌판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대치 중이던 참호에서 나와 선물을 교환하고 축구를 했다. 독일군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자 영국군이 스코틀랜드 전통음악으로 화답했다고 한다. 독일군의 3대 2 승리로 끝난 ‘휴전 축구’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등 많은 뮤지컬 오페라의 소재로 사용됐다. 양국 군은 당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도 친선 축구경기를 벌인다. 축구가 인류애를 이끈 반대의 경우다.

▦ 내셔널리즘이 가장 강한 스포츠라면 단연 축구다. 한일전을 비롯해 국가 라이벌전이 가장 격렬한 게 축구경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나온 ‘오노 세리머니’나 2012년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3, 4위전에서 나온 ‘독도 세리머니’ 같은 정치색 짙은 쇼맨십이 자주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축구를 ‘스포츠가 아닌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정남 독살 사건으로 관계가 험악해진 말레이시아가 북한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최종 예선에 대표팀 출전을 금지한 것도 축구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 ‘사드 축구’라며 며칠 전부터 온갖 논란과 구설수에 올랐던 한국과 중국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전이 한국의 참패로 끝났다. 질 수 있는 게 스포츠지만 사드 갈등으로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터에 받아 든 패배여서 더욱 허망하다. ‘축구 굴기’를 선언한 중국에 제대로 된 전술 하나 없이 안일하게 나섰다가 자초한 결과라고 하니 축구도 사드 외교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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