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태성 기자

등록 : 2017.04.14 04:40

마비된 삶에 날아온 한 마리 작은 천사 “고마워, 내 딸 펭귄”

[리뷰] 새에 대한 새로운 시선 '펭귄 블룸' '버드 브레인'

등록 : 2017.04.14 04:40

집 마당에 떨어진 까치 새끼

엄마의 추락사고로

초상집이던 가정에 웃음꽃 선물

그렇다고 휴먼 일변도는 지양

책 말미 엄마의 메시지에선

마비환자 현실 냉철하게 묘사

제 각각 인생의 낭떠러지에 떨어졌던 엄마 샘과 딸 펭귄은 여느 모녀처럼 서로 버팀목이 되어 함께 일어서는데 성공했다. 북라이프 제공

검은 털 반에, 하얀 털 반이 섞였으니 이름을 ‘펭귄’으로 정했다. 북반구였다면 팬더였을 뻔했는데, 남반구인 호주 태생이니 그래도 귀여운 이름을 얻은 셈이다.

블룸가의 막내 딸 ‘펭귄 블룸’은 그렇게 태어, 아니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펭귄 블룸’은 페이지마다 잔잔한 감동이 배어있는 책이다. 샘 블룸은 태국 여행에서 추락사고를 당했다. 두개골 곳곳이 부러졌고 몸 안 모든 장기가 충격으로 터졌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가슴 아래쪽은 모두 마비됐다. 휠체어에 고정되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더 이상 발가락 사이로 삐져 나오는 서늘하고 촉촉한 풀도, 발바닥 밑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여름의 모래사장도 느낄 수 없고, 더 이상 그 위에 발자국을 남길 수도 없다. 무엇보다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과 친밀한 접촉을 할 수 없다. 삶에서 그런 부분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미각도 사라졌다. 후각도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맡을 수 있는 냄새라곤 흐릿한 생선 비린내뿐이었다.

기나긴 병원 생활을 끝낸 샘이 마침내 집에 돌아왔을 때 펭귄이, 아니 새끼 까치 한 마리가 20m 높이 소나무 둥지에서 강한 해풍에 밀려 떨어졌다. 노아ㆍ올리버ㆍ루벤 세 형제는 샘의 허락을 받아 이 까치를 막내 여동생으로 삼았다.

“매일 매일이 장례식” 같았던 집안 분위기가 펭귄 덕에 바뀌기 시작했다. 학교가 파할 무렵이면 펭귄은 노래를 부르며 오빠들을 기다렸고, 이를 닦을 때면 부리로 스케일링을 도왔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면 곁에 함께 누워 뒹굴기도 했고, 어느새 침실로 숨어들어와 함께 낮잠을 자기도 했다.

오빠가 이 닦는 동안 장난 치는 여동생 펭귄. 북라이프 제공

귀염둥이 마스코트 노릇만 한 게 아니다. 지옥 같은 재활훈련, 물리치료를 샘과 함께 했다. 시도 때도 없는 통증이, 때론 그 통증보다 더한 비참함이 덮쳐올 때면 둘은 나란히 누워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거나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책은 샘과 펭귄이, 엄마와 딸로서 그렇게 서로 지지하며 함께 일어난 기록이다. 남편 캐머런 블룸은 이렇게 써뒀다. “이 작고 정신 나간 새를 보내주신 신께 감사 드린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습의 천사가 있다.”

책은 사진작가인 남편과 이 얘기에 감동받은 브레들리 트레버 그리버가 함께 만들었다. 그리버는 전세계 1,000만부 넘게 팔려나가면서 포토에세이 열풍을 불러왔던 ‘블루데이 북’의 저자다. 이 둘의 협동작업이었으니 스토리와 사진이 결합된 책 자체의 완성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특히 사진은 사진 자체도 아름답지만, 아내의 불편한 몸을 은근히 배려하는 앵글 또한 감동적이다.

여동생 펭귄은 오빠가 책을 읽거나, 기타를 연주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면 사람처럼 벌렁 드러누워 함께 뒹굴며 시간을 보냈다. 북라이프 제공

눈물 자아내는 휴먼스토리가 마음에 걸린다면 책 끝에 붙여둔, 샘이 직접 20여쪽에 걸쳐 쓴 ‘샘 블룸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더 감동적일 수도 있겠다. 샘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 카누 대표선수로 출전할 준비를 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재활했음에도 “아직도 내 몸과 화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마비환자가 됐다는 건 뜻밖의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사고로 인해 갖게 된 새로운 시각을 위대한 영적 각성이라 할 수도 없고, 이 경험 덕분에 제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됐다거나 새롭게 생의 의미를 찾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샘은 ‘휴먼 드라마’ 따위의 분홍빛 포장은 애당초 용납하지 않을 필체로 마비 환자와 주변인들에 대한, 냉정을 넘어서 때때로 냉혹한 태도로 현실적 설명을 들려준다. 그리고 척추마비 환자를 위해 책의 인세 10%를 세브란스 재활병원에 기부키로 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 책에 감동을 받았다면 척추마비 환자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도 고려해보라”고도 한다. ‘내 너를 일어서게 하리라’던 줄기세포 따윈 끼어들지 않는다. 이런 엄정한 자기 객관화, 적잖은 울림이 있다.

펭귄 블룸

캐머런 블룸 등 지음ㆍ박산호 옮김

북라이프 발행ㆍ222쪽ㆍ1만5,000원

버드 브레인

나단 에머리 지음ㆍ이충환 옮김

동아엠앤비 발행ㆍ192쪽ㆍ2만2,000원

오빠들과 함께 어울리다 자기가 사람인 양 구는 펭귄양의 활약상이 흥미로웠다면, ‘버드 브레인’도 함께 골라볼 법하다. ‘조류의 지능’, 이러면 재미 없다. 날 것 그대로 ‘새대가리’라 해야 한다. 그렇게나 나쁘다고 놀림 받는 새대가리에 대한 영국 인지생물학자의 반박문이다.

책의 성격은 머리말에서 딱 드러난다. 머리말을 쓴 사람은 보노보 연구로 유명한 세계적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이다. 그가 새대가리 책의 머리말을 썼다는 뜻은 곧 새가 ‘깃털 덮힌 유인원’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새의 뇌 구조 특성에서 시작해 인지, 학습, 소통, 협동, 자아, 추론 등 지능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보여주고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큰까마귀는 한바탕 큰 싸움을 벌이고 나면 서로 깃털을 골라주며 화해한다. 잠깐, 이건 영장류가 하던 짓 아닌가. 새를 '깃털 덮힌 영장류'라 부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동아엠앤비 제공

인공지능(AI) 덕에 이젠 널리 알려진 튜링 테스트를 새에게 적용해 새를 “공중의 아인슈타인”이라고까지 표현하는 데서는 그만 웃음이 빵 터진다. 조류의 지능이라면 짓궂게 떠올릴 만한 한 종이 있을 게다. 지능이 주제다 보니 등판기회가 좀처럼 없는데, 딱 한 곳에서 등장한다. 묘하게도 안 겹치는 듯 겹친다. 직접 확인해보길. 흥미롭고 매력적인 책임엔 분명하다. 그렇기에 거친 번역이 더더욱 아쉽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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