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이하 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여자 육상 3,000m 장애물 경기 우승자는 바레인 국기를 달고 뛴 케냐 출신의 루스 예벳(20)이었다. 이날 예벳의 기록(8분59초75)은 아시아 신기록이었고, 그가 딴 메달은 바레인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하지만 그의 금메달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예벳이 레이스 막판 여유를 부려 세계신기록을 놓치는 등 끝까지 최선을 다 하지 않은 데다, 바레인의 첫 금메달이 ‘오일 머니’로 선수를 귀화시켜 만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예벳 대신 박수를 받은 선수는 따로 있었다. 15위를 기록한 에티오피아의 에테니쉬 디로(25)다. 디로는 14일 열린 이 종목 예선에서 불의의 사고로 실격 위기에 처했지만 굴하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 당시 1,000m 구간을 3분9초52에 끊으며 선두권에서 달리던 그는 뒤에서 쫓아오던 선수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함께 트랙 위에 쓰러졌다.
경쟁자들은 이미 한참을 앞서간 상황.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운동화가 찢어지는 불운까지 겪었다. 하지만 디로는 포기하지 않았다. 운동화가 찢어지자 잠시 레이스를 멈춘 그는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는 맨발로 허들을 넘고, 물 웅덩이를 헤쳐 지나갔다. 전체 참가선수 52명 중 24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그는 트랙 위에 쓰러져 펑펑 울었지만 1등보다 많은 박수를 받았다.
다행히 그는 국제육상경기연맹의 비디오 분석 끝에 결선 진출 자격을 얻었다. 충돌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어렵게 진출한 결선에서 그는 9분38초77로 15위를 기록했다. 비록 메달을 따내진 못했지만 로이터 등 외신들은 그의 완주 스토리를 조명했다.
13일에는 또 다른 15위 선수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42세의 나이로 여자 1만m에 출전한 조 파베이(영국)가 주인공이다. 1997년 국제 무대에 데뷔한 파베이는 리우 올림픽까지 총 5차례의 올림픽에 나선 ‘철인’이다. 파베이는 40대 이전까지는 국제 대회에서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마흔살이던 201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유럽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만m 결선에서 경기 막판 질풍 같은 스퍼트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육상계를 놀라게 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치른 이후 임신과 출산으로 한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 놀라운 기록이다.
파베이의 이날 1만m 기록은 31분33초44로, 세계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 알마스 아야나(25ㆍ에티오피아ㆍ2분17초45)보다 2분 이상 뒤처졌지만 그에 대한 찬사는 이어지고 있다. 그는 유모차를 끌며 훈련하는 등 육아와 꿈을 위한 도전을 병행해왔다. 리우에서의 도전은 끝났지만 ‘엄마의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파베이는 영국 데일리 미러 등과 가진 인터뷰에서 “현실적으로 나이가 들어가지만 아직 은퇴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많아지지만 훈련을 한다면 더 빨라질 수 있다”며 내년 영국 런던에서 열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도전할 뜻을 밝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영상] 에테네쉬 디로의 ‘맨발 투혼’
[영상] 조 파베이의 ‘육아 투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