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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수지김(김옥분) 사건 (8.14)

입력
2017.08.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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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김의 살인범 윤태식. 그의 죄를 덮어주고 반공투사로 국민 앞에 서게 한 정보권력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자료사진
수지김의 살인범 윤태식. 그의 죄를 덮어주고 반공투사로 국민 앞에 서게 한 정보권력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자료사진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어져온 한국의 국가정보기관은, 긍정적인 역할 못지않게, 추악한 범죄의 주체로 기능한 일이 허다했다. 그 범죄들은 대부분 국민ㆍ국가가 아닌 권력ㆍ권력자의 안녕, 나아가 정보권력자의 출세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자행됐다. 인권과 국익을 위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가 국정원이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법적ㆍ제도적으로도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30여 년 전의 ‘수지김 사건’은 당시 장세동 체제의 국가안전기획부가 저지른 가장 비열한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수지 김’ 김옥분은 1952년 충북 충주에서 나서 초등학교를 나온 뒤 서울과 홍콩, 일본 등지를 오가며 험한 일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한 여성이었다. 그는 두 차례 결혼했다가 이혼을 했고, 1986년 가을 홍콩에서 서진통상이라는 무역업체 주재원이던 6년 연하의 윤태식과 재혼했다. 윤태식은 이듬해 1월 부부의 홍콩 아파트에서 다툼 끝에 수지김을 목 졸라 살해했다. 그는 북한과 미국 망명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뒤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했다”고 주장했고, 수지김이 북한 간첩이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안기부는 범행 사실을 알고도 그의 말을 진실인 양 묵인했고, 시나리오까지 정밀하게 조작, 기자회견 등을 통해 그 사건을 반공 선전도구로 활용했다. 수지김이 목숨을 잃고 졸지에 간첩이 된 탓에 가족(부모와 1남6녀)도 당국의 모진 조사를 받아야 했고, 이혼 당하고 학교를 못 다니고, 화병으로 숨지는 등 고초를 겪었다. 살인자 윤태식은 처벌 없이 나와 사기 행각을 이어갔고, 90년대 말 모종의 비호와 지원을 업고 지문인식 시스템 벤처회사 ‘패스 21’을 창업했다. 그는 2000년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말 정ㆍ관계 불법로비(윤태식 게이트)로 구속됐다. ‘수지김 사건’의 안기부 조작ㆍ은폐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건 2000년 초부터였다.

그는 2002년 재판에서 살인, 사기 뇌물공여 혐의로 징역 15년 6월을 선고 받았다. 당시 안기부장 장세동 등은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를 면했다. 유족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2003년 8월 14일 42억원의 배상을 판결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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