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구촌은 선거 중] 종족학살 재발 두려움 탓… 철권통치에도 3연임 확실

입력
2017.07.28 21:02
0 0

1994년 후투족의 투치족 학살

르완다 국민에겐 깊은 트라우마

분쟁 정리하고 경제 발전시킨

카가메의 부재 생각조차 못해

좀도둑도 사형시키는 경찰 통제

정치 비판ㆍ언론 자유도 없어

“독재 반대 목소리 언젠가 폭발

국가 재건 성공, 정치로 이어져야”

폴 카가메 대통령이 14일 선거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난자(르완다)=신화 연합뉴스
폴 카가메 대통령이 14일 선거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난자(르완다)=신화 연합뉴스

“경쟁보다는 대관식에 가깝다.”

아프리카 매체 올아프리카는 내달 4일 치러지는 르완다 대통령 선거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3연임에 도전하는 폴 카가메 대통령이 철저한 통제 하에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이 될 것이란 뜻이다. 카가메 대통령을 제외하고 프랭크 하비네자(민주녹색당), 필립 엠페이마나(무소속) 후보 등이 출마했지만 이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외신들 역시 한결같이 카가메 대통령의 승리를 예측했다. 카가메 대통령도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이다. 그는 최근 선거 유세 현장에서 “진실을 듣지 않기로 마음먹을 순 있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부정할 수 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는 2015년 카가메 대통령의 3연임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 국민투표 결과, 98%가 찬성표를 던진 것을 두고, 자신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그만큼 굳건하다는 것을 과시한 발언이다.

장기 집권을 꿈꾸는 카가메 대통령에 대해 르완다 국민의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은 카가메 대통령의 문제를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카가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상당히 복잡 미묘하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를 두고 르완다 국민에게 카가메 대통령은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와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방 안에 코끼리가 있는데도 못 본 척하는 것처럼, 심각한 상황이 닥쳤음에도 애써 외면한다는 뜻인데, 카가메 대통령은 르완다 국민에게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문제’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감정의 기저에는 르완다의 아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1994년 4월 다수인 후투족이 투치족 등 80만명을 잔인하게 죽인 ‘르완다 학살사건’은 르완다인들에게 트라우마 그 자체다. 르완다 국민은 또다시 종족 간 비극이 찾아올까 깊은 공포감 속에서 살아간다.

투치족의 반군대장 출신인 카가메는 슬픈 역사와 혼란을 이겨내고 정리한 국가적 영웅이다. 카가메는 1994년 대학살 사건을 종결 짓고 르완다를 통치하다 2003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식으로 대통령이 된 다음 지금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때문에 카가메의 부재를 또다시 일어날지도 모를 비극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카가메가 억압 통치 속에서도 장기 집권을 별 탈 없이 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사회 안정을 가져다준 것과 더불어 카가메 집권 기간 경제가 성장한 것도 국민이 카가메를 지지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카가메는 해외 투자를 적극 유치해 르완다를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로 등극시켰다. 르완다의 국내총생산은 2008년 48억6,000달러에서 계속 증가해 지난해 83억8,000달러까지 늘었다. 르완다의 한 시민은 “과거에는 타국 사람들이 르완다에서 왔다고 하면 피를 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는데 이제는 르완다라고 하면 안전, 개발, 위생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다”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뉴욕타임스 특파원 출신으로 르완다학살에 관한 책을 쓴 스테판 킨저는 보스턴글로브 칼럼에서 “교육의 질이 높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국민의 대다수가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고, 전기와 물 보급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는 등 과거보다 환경이 크게 개선된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도 과한 게 많다. 르완다에서는 그 흔한 정치 풍자 개그를 볼 수 없다. 대통령을 비난했다가는 경찰에 잡혀갈 수 있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일하는 한 개그맨은 “정치는 안 건드린다”며 이유를 묻자 손목을 모으며 수갑 차는 제스처를 보였다. 선거 과정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올아프리카는 “선거는 명부 조작, 집계 오류 등으로 얼룩져있다”고 전했고, 2010년 선거 현장에 있던 한 선교사는 “지역 지도자들이 집집마다 투표 용지를 수거하러 다녔는데, 집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야당은커녕, 언론의 자유도 없다. 대중 앞에서 거짓말을 해도 대통령을 비난할 수 없다. 카가메 대통령은 2010년 재임에 성공한 뒤 “세 번째 임기를 추구하면 네 번째 다섯 번째 임기도 모색하려고 할 것”이라며 2017년 이후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처럼 말했지만 나중에 말을 바꾸고 2024년까지 장기 집권을 하려고 또 한 번 선거에 나섰다.

때문에 르완다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ABC뉴스는 “사회적 안정 이면에는 바나나 등 사소한 것을 훔친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는 등 정부의 권한 남용이 있다”고 지적했고, 이코노미스트도 “르완다는 경찰국가”라며 “다른 목소리를 억제한다고 불만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언젠가 폭발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스테판 킨저는 “폐허를 뒤바꾼 카가메의 성공에 의문을 품을 수는 없다”며 “빈곤 퇴치 공식만큼 정치적 전환에도 성공한다면 르완다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우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