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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 주석이 전화 받지 않은 진짜 이유

입력
2016.03.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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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관계라고 자랑하던 한중 관계가 사드 배치 논란으로 흔들리고 있다.

G2 시대 중국과 미국 관계는 겉으로는 대립 관계지만 속으로는 동반자 관계다. 미국은 중국 본토를 침략한 적이 없는 유일한 열강이다. 중국도 미국에 역사적 원한이나 피해의식이 없다. 지난 10년간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미국에 대한 중국인의 호감도 순위 역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미 관계는 “너 죽고 나 살자”는 제로섬 게임의 정치군사적 적대 관계였던 미소 관계와 다르다. 중미 양국은 자본주의 공생체이자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살린다”며 상생해야 살아남는 경제 무역의 라이벌(상호 최대 채권채무국, 상호간의 3대 무역 상대국)이다.

북한과 중국 관계는 옛날에는 혈맹, 지금은 단순 수교 관계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북중 관계는 ‘전통적 우호관계’로 격하되더니 2009년 북한 2차 핵실험 이후 최저 단계인 ‘단순 수교’로 급전직하된 후 그대로 머물러 있다. 오늘날 중국인에게 가장 큰 욕은 “북한에 가서 살아라”이다. 최근에는 북한을 동북아의 급진세력 이슬람국가(IS)로 부르는 중국 네티즌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법과 제도에 의한 의법치국(依法治國)과 유교식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은 고모부와 고위층 인사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지도자는커녕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중 관계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하지만 북중 관계를 과대평가함으로써 한중간 신뢰를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적대 관계다. 식민사관이나 친일잔재 청산 문제에서 자유로운 중국의 반일 감정은 한국의 그것에 비해 폭과 깊이, 차원 자체가 다르다. 중국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서구열강의 침략은 용서할 수 있지만 섬나라 일본의 만행은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 역대 중국 지도자 중 가장 강력한 반일정책을 펼치는 시 주석은 난징대학살기념일을 국가추도일로 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면수심의 일본군이 저지른 대학살은 반인륜적 범죄이자 세계인을 경악시킨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면 가운데 하나다.” 요즘 중국에서 시 주석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비결은 부정부패 척결과 항일민족주의를 내걸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 반만년 중국 역사상 어느 황제나 주석도 못한 두 가지 큰 일을 감행하는 영도자에게 중국인들은 열렬한 호응을 보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의 전략적 핵심 가치는 일본의 군국주의 재진출을 막아주는 ‘방파제’이다. 시 주석은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의 한국을 중국의 항일동맹전선에 동참시키는 꿈을 품었었다. 그러한 꿈에서 그를 깨운 것은 작년 12월 28일 한일위안부협상타결이었다. 믿었던 한국이 돌연 중국의 주적인 일본을 은근슬쩍 끼워 넣은 ‘한미일동맹’을 외치며 중국의 심장을 노리는 ‘비수’로 변해버린 것 같은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1월 6일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진짜 이유다. 한마디로 중국은 “한미동맹은 참아도 ‘한미일동맹’은 못 참는다.”

북중 국경선의 길이는 휴전선(248㎞)보다 5배 이상이 긴 1,350㎞이다. 개울 위쪽 넓은 곳은 터놓은 채 아래쪽 좁은 곳에 둑을 쌓는다고 물고기가 잡히겠는가. 한미(일)이 북한의 포위와 봉쇄를 강화할수록 북한의 갈 길은 중국뿐이다. 북한의 도발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가급적 일본을 배제시킨 한미동맹에 더하여 중국과의 안보협력, 신뢰회복에 힘써야 한다. 사드 배치를 최대한 늦추는 대신 중국과의 물밑협상을 통해 중국의 실제적인 대북제재 역할을 끌어내야 한다. 현실적인 국익 차원에서는 일본보다 중국을 중시하는 미중일의 외교우선순위를 회복해야 한다. 구한 말 중국 패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지 못해 패망한 경험을 거울 삼아 미국 패권 이후를 철저히 대비해 잘못된 역사의 쳇바퀴를 공전시켜서는 안된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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