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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4월 15일] 바꿀 사람은 바꿔야

입력
2014.04.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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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업무 문제로 경질된 장관급 인사는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유일하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책갈등으로 스스로 사표를 냈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정권의 뜻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찍어낸 경우다. 윤 전 장관도 기름유출 현장에서 코만 싸매지 않았어도 대통령의 총애로 짐작하건대 오래 남아있을 수 있었다. 윤 전 장관이 청문회에서 자질 논란을 빚자 박 대통령은 "쌓은 실력이 있으니 지켜보고 도와달라"며 감쌌다.

박 대통령은 시쳇말로 자신이 필 받은 사람은 끔찍이 챙긴다. 측근이라고 해서 함부로 신뢰하지 않지만 충성심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웬만해선 내치지 않는다. 특이한 박 대통령의 용병술은 젊은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버지 박정희는 가장 믿었던 측근들의 권력투쟁에 희생당했고 그도 여러 번 배신을 당했다. 박 대통령이 권력을 쫓아 움직이는 정치인보다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이 체질화된 군인과 관료, 법조인을 선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박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람이다. 적어도 충성심 하나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남 원장은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자 돌연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 국정원이 스스로 정쟁의 한 가운데 뛰어든 건 전례가 드문 일이다. 정국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와 대화록 실종 사건으로 전환되고 졸지에 공수가 바뀌었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 외교문제로 비화하는데도 침묵을 지키다 여론이 비등하자 한참 후에야 입을 뗐다. 증거 위조가 명백했지만 "조사 후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 있으면 묻겠다"며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때와 판박이다. 당시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뒤로 빠져있다 뒤늦게"책임을 묻을 것이 있다면 묻겠다"고 얼버무리더니 결국'셀프 개혁'으로 면죄부를 줬다.

박 대통령이 감싸고 도는 동안 국정원은 북한이나 해외정보 수집보다는 국내 체제수호에 매달렸다. 국보법 위반 사건은 노무현 정권 시절 29건이던 것이 지난해 102건으로 급증했다. 관련 부서들이 무리한 실적 경쟁을 올리다 급기야 터진 게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다.

국정원은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의 동력을 갉아먹고 부담을 지우는 '암 덩어리'가 됐다. 지난 한 해 내내 국정원 뒤치다꺼리로 허송세월 했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남 원장 취임 이후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하소연이다. 어제 검찰수사 발표에서 국정원의 간첩 증거조작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박 대통령은 약속대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남 원장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 이상 봐주려다가는 대통령의 리더십까지 상처를 입게 된다.

북한 무인기 사태는 영공 방어 실패와 사건 은폐 만으로도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북한이 1년 전부터 무인기 침투를 공언했지만 우리 군은 무방비 상태로 있다 허를 찔렸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9일이 지나서야 사건을 보고받았다. 군 기강이 무너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장관은 올해로 5년째 장관직을 맡고 있다.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바람에 싸놓은 이삿짐을 풀고 다시 눌러 앉았다. 그는 물론이거니와 군 내부에서도 '김관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장관들을 보면 몸을 던져 일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고분고분하고 충성심은 높을지 몰라도 국민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장관은 찾아볼 수 없다. 죄다 대통령의 눈과 입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박 대통령이 진정 성과를 내고 싶다면 바꿀 사람은 바꿔야 한다. 지금은 충성 놀음에 취해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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