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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불확실성에 기댄 우리의 미래

입력
2017.04.2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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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최근 미국의 요청에 따라 대북압박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베이징=AP연합뉴스
중국은 최근 미국의 요청에 따라 대북압박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베이징=AP연합뉴스

지난 6,7일 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의 최우선 이슈는 북한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긴장이었다. 주요 2개국(G2)이라 불리는 미중 정상들이 처음 얼굴을 맞대자마자 꺼낸 이야기가 다름아닌 ‘우리의 문제’였다는 점은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얼마나 심상치않으며, 이를 지켜보는 세계의 시선이 뜨거운지를 가늠케 했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한반도 상황에 누군가 ‘불씨’를 던져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하루하루가 지나는 와중에 그나마 북한을 무력으로 억지할 수 있는 미국과 원유공급, 교역을 통제해 경제적으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중국의 정상들이 온화한 리조트의 만찬장에서 웃음을 나누며 한반도를 걱정했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만난 후 대북압박과 통상문제를 미중이 ‘빅딜’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상회담이라는 최고수준의 외교무대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작동했다는 점은 매우 위안이 된다.

하지만 미중정상회담 이후 김일성의 생일인 15일(태양절)까지 1주일여 동안 한반도 주변에서 형성된 일촉즉발의 위기를 지켜보며 한가지 드는 우려는 한반도의 운명이 안타깝게도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불확실성’에 지나치게 종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대변인의 입이나 트위터를 통해 거듭 밝혔듯이 자신이 가진 ‘카드’들을 조끼 속 깊숙이 감쳐둔 채 북한을 상대로 공격적이지만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 새롭게 트럼프 정부가 마련한 대북정책 원칙인 ‘최고의 압박과 개입’의 영역에는 당장 전쟁으로 치닫게 할 선제타격은 물론, 트럼프가 김정은을 불러들여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선택지까지 극단적인 내용의 카드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북한이 준비할 겨를을 주지 않기 위해 수많은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불시에 테이블로 던질 대북 카드가 과연 무엇인지는 김정은 정권은 물론 우리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군사옵션을 선택한다면 동맹과 우선 협의하겠다고 하면서도 칼빈슨 전단의 항로에 대해 불확실한 시그널을 보내고, 한미동맹을 강조하다가 느닷없이 자유무역협정을 ‘리폼(reform)’하겠다며 안보 청구서를 내미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외신들은 이러한 트럼프의 불확실성을 외교정책의 중요한 원칙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전 당시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언제라도 핵무기 등 극단적인 ‘카드’를 던질 수 있다는 암시를 꾸준히 주며 불확실성을 극대화했던 이른바 ‘광인이론(madman theory)’ 적용의 전례를 본다면 트럼프의 뒤죽박죽 외교도 그다지 낯선 사례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닉슨의 전략이 베트남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꼼꼼히 따져본다면, 트럼프의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이롭지 않아 보인다.

비록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만큼 즉흥적으로 정치를 하지는 않지만, 주한미군의 사드배치를 놓고 우리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포기하기 힘든 ‘북한 레버리지’를 내려놓으면서까지 얼마나 미국의 장단에 따를지는 그야말로 예측불허하다. 트럼프의 환율조작국 지정 예봉을 피하려고 황급히 대북압박 수위를 끌어올렸지만, 가을 시진핑 2기 출범을 앞두고 안팎으로 안정을 다져야하는 중국이 어느정도 대북억지력을 보여줄지도 미지수이다. 최근 한반도 주변 중국의 무력시위를 보더라도 중국이 정확히 누굴 압박하는지도 알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사드로 중국과 등을 진 우리 정부 누구도 시 주석의 돌부처 표정 뒤에 가려진 속내를 읽어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주요 촉발제 중 하나로 많은 이들은 여전히 1950년 1월 당시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연설을 꼽는다. 북한이 이를 믿고 5개월 후 남한을 침공했지만, 미국은 김일성의 판단과 달리 적극적으로 한반도를 방어했다. 다시한번 한반도에서 이같은 불확실한 메시지 전달과 오판이 거대한 불행을 일으키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양홍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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