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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역사 만들기 정치독점시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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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역사 만들기 정치독점시대 지났다

입력
2015.11.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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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지 쓰는 사람이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 이보다 선명한 메시지는 없다. 법도 시행령도 아닌 고시(告示) 하나로 두 달째 여론이 들끓는 건 분명 소모적이다. 중도층이 진보 쪽으로 움직여 여론도 보수에 불리해졌다고 한다. 최대 패자는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여당 의원들일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앞으로 치러야 할 정치적 대가 역시 만만치 않다. 등 돌린 역사학자들이 나중에 지금 시기를 어떻게 기술할지 생각하면 암담해질 수 있다. 여기에 교과서 집필진마저 공개하지 못하는 딱한 사정이고 보면, 이번 정부의 국정화 추진에는 사전에 치밀한 정치적 셈법까지 작동되지 않은 것 같다. 국정 교과서 논란에 정치적 유불리 계산보다 앞선 다른 판단이 개입됐다고 보는 연유다.

야당은 물론 전국민이 반대해도 지도자가 보기에 국가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것을 추진하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다.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 건설이 그렇게 추진 된 사례다. 그런 점에서 국정화 배경에 대한 대통령의 주목할 설명 중 이전과 달라진 게 두 차례 발견된다. 먼저 이달 5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대통령은 “(역사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어도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지난 13일 8개국 뉴스통신사들과 인터뷰를 하면서인데,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이유’에 대해 '비정상의 정상화'로 설명한 뒤 “통일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라고 다시 말했다. 이를 통해 추정되는 국정화에 대한 대통령의 미래 시선은 통일, 통일준비에 가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국정화를 서둔 것은 중국 방문 직후로, 교육부조차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시점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국정화 뒤에 북한에 대한 새로운 판단이 있고, 중국 일본의 움직임에 대한 대응 차원도 있을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대통령의 뜻이 이런데 있다면 그것이 역사를 만드는 지도자의 결단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북한정세만 해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5년 내내 대화하지 않은 이유를 당시 청와대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비공개 판단을 통해 북한이 무너질 수도, 통일이 빨리 올 수도 있다고 믿었다. 정작 김정일의 죽음까지 맞혔지만 그것이 정권 붕괴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정책은 실패한 것이 됐다.” 이번의 경우 북한 문제가 국정교과서 문제로도 불똥이 튄 것이라면 그런 판단에 검증은 필요해 보인다. 더구나 이번 국정화 논란에서 언론과 권력의 거리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진보는 물론이고 보수언론조차 선뜻 찬성하지 못한 게 그런 단면이다. 얼마 전 공개된 마오쩌둥과 헨리 키신저의 1973년 11월 대화록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마오가 왜 미국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난리냐고 하자, 키신저는 언론 탓을 했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키신저는 비판의 칼을 휘두르던 언론들에 대해 자신들이 국가를 운영한다고 믿고 대통령을 놀림감으로 만들고 있다고 힐난하면서, 이들의 말을 염두에 두었다면 미중 대화도 없었을 것이라고 웃어 넘겼다. 하지만 키신저는 9개월 뒤 주군인 닉슨의 하야로 포드 정권에 재취업하는 신세가 된다.

역사는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지금은 정치인이 역사 만들기를 독점하던 시대도 아니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선정한 2015년 미국을 변화시킨 50인 가운데 1위는 보수성향이나 찬성의견에 가세해 동성결혼 합헌을 끌어낸 앤서니 케네디 연방대법관이었다. 50인 중에 정치인은 정작 4명에 불과했는데, 백악관 주인은 여기에 끼지 못했다. 폴리티코가 제시한 선정기준인 미래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놓고 볼 때, 정치적 파워의 크기가 미래를 만들지는 못하는 현실이다.

이태규 사회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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