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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선에서 특고의 인구학적 의의

입력
2016.10.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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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새누리당 장석춘 의원이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 ‘특고’ 9개 직종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국정 과제라는 점에 비춰볼 때, 집권 후반기가 되어서야 관련 법안이 제출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늦게나마 정부ㆍ여당의 주도 아래 특고의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입법 조치를 논의하게 된 점은 다행스럽다.

우리가 관행적으로 쓰는 특고란 단어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줄임말이다. 사실상 사용자에 종속되어 일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무공급자 유형을 뜻하고, 관념적으로는 근로자와 자영인의 중간지대(gray zone)에 있다고 본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줄임말로는 ‘특근’이나 다른 단어가 더 적절한데도 ‘특고’란 말을 쓰는 이유는, 애당초 그런 노무공급자를 ‘특수한 고용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특수고용노동자’라 부르던 언어 습관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특고를 사용하는 기업은 노동법과 사회보험법적 부담에서 벗어나 낮은 노무비용을 부담한다. 이런 이점 때문에 1990년대 중반 이후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기업은 특고의 숫자를 늘렸고, 그 만큼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는 확대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 노동법과 사회보험법의 적용 범위에 특고를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졌으나, 2007년 위 9개 직종의 특고를 산재보험 적용 대상자로 포함시킨 것 외에 특기할 만한 입법적 성과는 없다.

이렇게 특고의 보호 입법이 지지부진한 원인으로는 그로 인한 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기업의 거부감,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너무 다양한 특고의 고용 형태로 인한 입법기술적 어려움, 입법을 추진할 만큼 특고가 조직되어 있지 않고 기존 노동조합의 관심도 많지 않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특고의 보호 입법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중요한데, 이들 역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의 상황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무렵에야 특고는 정치권의 관심을 받는다. 조직되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5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을 무시해서는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1997년 15대 대선 이후 대부분의 대통령 선거는 2% 내외의 득표율 차이로 승패가 갈라졌다. 2016년 20대 총선의 유권자 수인 4,210만명을 기준으로 삼을 때, 이는 약 84만표의 격차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에서 198개의 투표구 단위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보다는, 전국 단위의 대선에서 특고의 50만표는 무시하기 어려운 숫자로 다가온다. 이로 인해 매 대선마다 모든 후보의 공약집에는 특고의 보호 입법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실린다.

문제는 이런 절실함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는 약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교각이 하나씩 놓이던 시골의 다리처럼(약속했으니 다리를 짓긴 하지만, 다 지어 버리면 다음 선거 때 쓸 공약이 없으므로, 당선자는 그 준공을 서두르지 않는다) 특고의 보호 입법을 마련한다는 약속은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 집권 초기 현 정부의 노동개혁 논의에서 노동 유연화라는 기업 논리에 압도되어 특고에 대한 정책적 의지가 약했던 것, 다음 대선이 다가오는 집권 후반기에서야 관련 법안이 제출된 것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ㆍ여당이 과거의 약속을 잊지 않고 특고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법안을 제출한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 신의를 지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대선 때 이를 공약으로 재사용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입법에 성공해서 특고의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건널 교량의 교각 하나가 세워지길 희망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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