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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록 : 2017.02.21 14:25

[이정모 칼럼] 중력파, 어디에 쓸까?

등록 : 2017.02.21 14:25

벌써 3년 전인 2014년의 일이다. ‘세기의 발견’이라는 어마어마한 제목의 과학기사가 전세계로 타전되었다.

미국 과학자들이 남극의 전파망원경으로 중력파를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중력파라니! 중력도 아는 말이고 파동도 아는 말인데 중력파라는 낯선 단어에 당황했다. 물리학 문외한에게 닥치는 당황스러운 상황의 범인은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왜 이리 해놓은 게 많은지. 중력파도 아인슈타인이 그 존재를 예측하고 심지어 수학적으로 증명까지 했다. 물리학 문외한에게는 수학적으로 증명을 했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로 설명해야 한다.

다행히 말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 매트리스에 무거운 쇠공을 올려놓으면 그 부분이 푹 커진다. 이것을 물리학자들은 굳이 질량이 공간을 왜곡시켰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거운 쇠공을 들어올리면 어떻게 될까. 푹 꺼졌던 부분이 평평하게 솟아오르면서 작은 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이게 증력파다. 침대에서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므로 푹 꺼졌다 다시 평평하게 솟아오르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음, 중력파는 이런 것이군.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발견이라는 게 사실은 착오였다는 게 밝혀졌다. 미국 과학자들이 본 것은 중력파가 아니라 성운 때문에 생긴 잡음이라는 것이다. 이때 발표한 연구자들을 비웃거나 비난하는 과학자들은 없었다. 다만 아쉬워했을 뿐이다. 이번에는 잡음이었지만 언젠가는 진짜 중력파가 발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게 과학문화다.

과학자들은 이미 1990년대부터 거대한 장치를 건설하여 2000년대 가동하기 시작했다.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 일명 라이고(LIGO)가 바로 그것. 라이고에는 한 변의 길이가 4킬로미터에 달하는 니은(L)자 모양의 긴 터널이 있으며 양쪽 끝에 거울이 달려 있다. 중심부에서 거울로 빛을 쏘면 일정한 시간에 되돌아온다. 만약에 중력파가 터널을 지나가면 양쪽 터널의 길이가 미세하게 변한다. 그러면 빛이 되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변한다. 이걸 보고 중력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거대한 장치가 필요한 까닭은 중력파가 너무 약해서 관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양보다 50%쯤 더 커다란 중성자 별 두 개가 1㎞ 떨어져서 회전할 때 발생하는 중력파는 태양 정도의 천체를 수소 원자 반지름만큼 변화시킬 뿐이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힘을 관찰하려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검증이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되었다. 중력파가 없어도 된다. 그런데도 꼭 중력파를 봐야 하는 이유는 중력파에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 모습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중력파로 블랙홀을 볼 수 있다. 블랙홀이 만들어지고 거대한 블랙홀이 합쳐지는 과정을 알아낼 수 있다. 중력파를 통해 우주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9월,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이 중력파를 예견한 지 꼭 100년이 되었을 때, 라이고에 간섭무늬가 생겼다. 블랙홀 두 개가 충돌했다. 걸린 시간은 불과 0.15초. 이때 방출된 시간당 에너지는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나오는 모든 빛 에너지의 50배나 되었다. 이 중력파가 라이고의 4㎞짜리 터널을 1경 분의 4㎝만큼 변화시켰다.

전세계 13개 국가 출신의 1,000명 이상의 연구자로 구성된 LIGO 과학협력단에는 국내 연구진도 2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 연구진은 주로 중력파 검출 데이터에 섞여 있는 잡음을 분리하는 알고리즘을 연구하고 어떤 천체가 어떻게 관측될지 예상하고 확률을 제공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이 사용한 국가 R&D 예산은 2011~2013년에 받은 3억 원이 전부였다. 그 전후에는 연구진들은 개인 연구비를 들여 연구에 참여한 셈이다. 헐~.

9월에 중력파가 검출되었지만 그 내용은 공식 발표를 하기까지는 엠바고에 붙여졌다. 이때 LIGO 과학협력단의 일원이었던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오정근 박사는 이미 중력파에 관한 세계 최초의 교양과학서를 집필하고 있었다.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이 바로 그것. 그는 연구팀의 일원이었으므로 중력파 발견에 관한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일단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서 중력파 발견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순간에 책을 발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정근 박사는 집필은 했지만 원고를 넘기지는 않았다. 그는 이듬해인 2016년 2월 11일 공식발표가 난 직후에야 마지막 챕터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때가 밤 12시 30분이었다고 한다. 이게 과학자의 윤리다.

2016년 말 학술지 사이언스는 ‘올해의 혁신성과’ 열 가지를 발표하면서 중력파 검출을 첫 번째로 꼽았다. 중력파를 어디에 써 먹을지 아직은 모른다. 스마트폰에 쓰이는 전자기파도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은 무용해 보여도 언젠가는 우리 삶을 바꾸는 게 과학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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