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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디지털 시대의 톨레랑스

입력
2017.01.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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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저것은 틀려’라는 말은 잘못이다. 이것과 저것은 다른 것이다. 당신 생각은 내 생각과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다. 둘이 하는 이야기가 서로 다른 논리일 뿐인데 언쟁하다 갑자기 목소리 큰 사람이 상대방이 틀렸다며 핏대를 올리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우리 일상 언어에서 ‘틀리다’는 표현이 습관처럼 사용되는 것은 옳고 그름,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데 익숙한 우리 문화 때문일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틀린 사람으로 솎아내고, 나와 피부색, 종교가 다른 사람은 차별하는 문화 말이다. 오래 전 ‘톨레랑스’라는 프랑스어가 소개되면서 그래도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차이보다는 차별에 익숙하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할 수 있다. 디지털은 한계비용 없이 똑같은 것을 무한 복제할 수 있다. 복제본과 원본은 똑같다. 디지털에서는 0 아니면 1이므로 같은 것 아니면 다른 것이다. 아날로그에서는 0과 1 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수가 존재하지만 디지털은 매몰차게 0 아니면 1의 양자택일이다. 양자택일은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다. 0이 아니면 1이고, 흑이 아니면 백이고, 빛이 아니면 어둠이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이고, 정답이 아니면 오답이고,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 될 수 있는 위험한 논리다. 하지만 현실세상이 어디 그런가.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생각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정답이 없는데도 마음속에 미리 정해 놓은 정답을 강요하는 데서 불행이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심지어 정치에서도 정답을 강요하고 정답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항상 옳은 게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옳고 그른 것 사이에는 약간 옳은 것, 일부 옳고 일부 그른 것, 약간 그른 것 등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세상은 양자택일도, 사지선다도 아니다. 인생은 정답이 없는 주관식 문제다. 지금 옳은 것이 나중에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생각이 나중에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의견과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의견의 공존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시작한다. 꽃밭의 꽃들이 아름다운 건 형형색색 꽃이 제각각 피어있기 때문이고, 무지개가 아름다운 건 일곱 가지 서로 다른 색이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양자택일에 익숙해지면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잊어버리게 된다. 디지털 시대에 의견의 자유, 차이에 대한 톨레랑스를 더욱 강조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895년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이란 기념비적 저서를 통해 소중한 성찰을 남겼다. 그는 “가령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같은 의견인데, 단 한 사람이 그것에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여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케 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한 사람이 힘을 가지고 있어 인류를 침묵하게 하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썼다. 의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의 발표를 억압함으로써 생기는 해악은 그것이 전 인류에게서 ‘행복’을 빼앗는다는 점에 있다.(…) 만일 그 의견이 올바른 것이라면 사람들은 진리를 가질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또한 그 의견이 틀린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진리와 잘못의 충돌에서 태어나는 진리의 한층 더 명확하고 생생한 인상이라는 이익을 잃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120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꼭 새겨야 하는 대목이다.

디지털화가 가속화할수록 우리는 흑백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자유로운 상상력, 다양한 색상, 미묘한 차이는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0과 1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린 극단적인 세상이 아니다. 톨레랑스는 무수히 많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고 존중이다. 디지털 시대야말로 아날로그적 톨레랑스가 더 절실하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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