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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밤없는 EPL 기행… 박싱데이, 런던을 찾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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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밤없는 EPL 기행… 박싱데이, 런던을 찾은 사람들

입력
2017.01.1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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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화이트 하트 레인 경기장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제 20라운드에서 토트넘과 첼시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화이트 하트 레인 경기장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제 20라운드에서 토트넘과 첼시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겨울은 을씨년스럽다. 오전 8시를 넘겨 늦게 뜬 해가 오후 4시에 빨리 진다. 그만큼 낮이 짧아 볕 보기가 힘든데 그마저도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날이 많다. 해가 지면 추위가 몰려와 바깥 활동이 힘들고 상점들도 오후 8시면 대부분 문을 닫아 도시의 활기가 떨어진다. 그만큼 여행객들에게는 런던 겨울여행은 매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축구팬이라면 이야기다 다르다. 축구팬들에게 런던의 겨울은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박싱데이(boxing day·12월 26일)’를 시작으로 1월 초까지 경기가 계속 열린다.

잉글랜드 프리미이어리그(EPL) 경기는 팀 당 주말마다 한 경기를 치르지만 현지 휴일이 많은 박싱데이 주간에 주당 두 경기를 치른다. 런던의 경우 첼시, 아스날, 토트넘, 웨스트햄, 크리스탈 팰리스 등 1부 리그 팀들은 물론이고 설기현이 뛰었던 풀럼, 박지성이 뛰었던 퀸즈파크레인저스 등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챔피언십(2부 리그) 소속 팀들도 연고를 두고 있어 ‘1일 1경기’관람도 가능하다.

지난 박싱데이 주간인 2016년 12월 31일(현지시간) 열린 첼시의 홈경기를 시작으로 아스날(1월 1일), 웨스트햄(2일), 크리스탈 팰리스(3일), 토트넘(4일)의 홈경기가 런던 일대에서 차례로 열려 축구팬이라면 골라보는 재미를 느낄 만 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셀허스트파크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제20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와 스완지 시티의 경기에 앞서 이청용(왼쪽 두번째)이 몸을 풀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셀허스트파크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제20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와 스완지 시티의 경기에 앞서 이청용(왼쪽 두번째)이 몸을 풀고 있다.

친절한‘쌍용’과 전력질주 손흥민

그 중에서도 한국 축구팬들에게 지난 3일과 4일 경기는 ‘황금 일정’이었다. 3일 런던 셀허스트 파크에서 열린 크리스탈 팰리스-스완지 시티전은 이청용(29)과 기성용(28)의 소속팀 맞대결인 만큼 한국 여행객들의 발길이 몰렸다. 런던 시내에서 셀허스트 파크와 근접한 노우드 정션(Norwood Junction)역으로 가는 열차 기점인 런던브리지(London Bridge)역 플랫폼에 경기 2시간 전부터 한국인이 몰렸다.

처음 만나는 이들도 “경기장 가느냐”는 한 마디로 친구가 됐다. 경기장에 가니 더 많은 한국인들이 모였다. 여행객과 유학생, 취재진 등 어림잡아 100명 이상이었다.

이날 크리스탈 팰리스의 이청용이 결장하면서 ‘쌍용’의 맞대결은 무산됐으나 부상에서 복귀한 스완지시티의 기성용이 풀 타임 출전하며 승리를 이끌어 한국 팬들의 마음을 달랬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경기 후 기다리던 팬들에게 끝까지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들과 함께 유럽 축구여행을 온 김종환(45)씨는 “기성용은 체력, 이청용은 정신적으로 지쳤을 텐데 모든 팬에게 인사해 감동받았다”고 전했다. 강추위 속에서 약 1시간을 기다려 기성용의 사인을 받은 아들 가휴(15)군도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스완지 시티의 기성용이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셀허스트파크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제 20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을 마친 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스완지 시티의 기성용이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셀허스트파크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제 20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을 마친 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이튿날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가 열린 화이트 하트 레인에도 ‘어제 본 그분들’이 다시 나타났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은 이날 지역 라이벌 첼시의 단일리그 최다 연승 기록인 14연승을 저지했다. 2 대 0으로 토트넘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화이트 하트 레인은 뜨거운 환호로 가득했다. 손흥민은 후반 추가시간 교체 투입되면서 많이 뛰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주어진 2분 동안 전력 질주로 경기장을 누벼 박수를 받았다.

골라보는 재미부터 골라먹는 재미까지

골라 보는 재미만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별한 먹거리가 없기로 유명한 런던이지만 경기장마다 숨은 먹거리들이 있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홈구장 셀허스트 파크는 애주가들에게 매력적인 구장이다. 과일 향이 도드라진 구단 자체 브랜드 맥주 ‘팰리스 에일(Palace ale)’을 비롯해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등 각종 와인까지 판매한다. 단, 관중석 내 주류 반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남은 술을 관중석에 들고 가기 위해 여유롭게 마시다가는 경기 시작 시간에 쫓겨 ‘강제 원 샷’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면 나중에 곤욕을 치를 수 있다. 한 열에 대략 15개 좌석이 길게 붙어 있어서 가운데 자리에 앉으면 화장실에 갈 때 마다 연신 “미안하다(Sorry)”를 외치며 관중들을 지나가야 한다.

크리스탈 팰리스 홈구장 셀허스트파크에서 판매하는 팰리스 에일.
크리스탈 팰리스 홈구장 셀허스트파크에서 판매하는 팰리스 에일.

토트넘 홈 구장 화이트 하트레인의 대표 먹거리는 파이다. 특히 치킨 파이와 스테이크 파이가 대표 음식이다. 한국에서 파는 파이보다 맛이 짜고 양도 많다. 파이 또한 장내 보안요원에 따라 던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입을 막기도 하니 되도록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경기가 끝난 뒤 여운을 즐기고 싶다면 경기장 근처에 있는 ‘펍’을 권한다. 간단한 안주 에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면서 현지 축구 팬들의 열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경기장 주변 마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햄버거 푸드 트럭도 즐비하다.

지루할 새 없는 스포츠 천국… 지름신 주의보

축구팬이라면 경기가 없는 평일 낮도 구경거리가 쏠쏠하다.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첼시 홈구장 스탬포드 브리지, 영국 축구의 성지 웸블리 등 런던에 위치한 많은 구장에서 ‘스타디움 투어’프로그램을 상시 진행하기 때문이다.

구장을 둘러보는 비용은 약 2~3만원. 구단 및 경기장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을 비롯해 라커룸, 기자회견장, 벤치, 그라운드 등 경기 때 갈 수 없는 공간들을 구경할 수 있다.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앞에서 기념 촬영중인 축구팬들.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앞에서 기념 촬영중인 축구팬들.

어느 경기장이든 투어를 마칠 무렵 ‘신(神)’을 만난다. 경기장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아니고 우승에 한이 맺힌 귀신도 아닌 바로 ‘지름 신’이다. 축구 종주국답게 구단 유니폼을 포함한 각종 의류부터 로고를 새긴 반려동물 용품까지 갖가지 상품을 판다.

특히 박싱데이 기간에 파격 세일 상품이 많다. 토트넘 팀 스토어에서 지난 시즌 유니폼 상의를 15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2만원 조금 넘는 가격에 구입했다. 웬만한 체육복 보다 저렴한 가격에 팬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토트넘의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 앞 팀 스토어에 수많은 팬들이 몰려 있다.
토트넘의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 앞 팀 스토어에 수많은 팬들이 몰려 있다.

런던 남서부의 윔블던 테니스경기장도 스포츠 팬이라면 가볼 만 한 여행코스다. 세계 최고 역사를 지닌 윔블던 테니스대회가 매년 열리는 이곳에서 테니스 문화와 장비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결승전이 열리는 센터 코트도 직접 들어가볼 수 있다.

직전 대회의 대진표를 그대로 보존하고 우승자의 사진을 포토월로 제작해 우승자 예우와 관광 콘텐츠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경기 일정이 맞으면 풋볼리그1(3부 리그)의 AFC 윔블던 경기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비록 3부 리그 팀이지만 기존 윔블던 연고팀(현 MK 돈즈)의 연고지 이전 이후 팬들이 뭉쳐 새 구단을 만든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내 프로축구 K리그의 부천 FC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팀인데 어느 팀보다 뜨거운 열기를 자랑한다.

영국 런던 남서부의 윔블던 테니스 경기장 전경.
영국 런던 남서부의 윔블던 테니스 경기장 전경.

“한국사람이 더 무서워” 구매대행 폭리에 울상도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터무니없이 비싼 축구 입장권 구매대행료다. 3일 런던에서 만난 대학생 조모(23)씨는 “크리스탈 팰리스-스완지시티, 토트넘-첼시전 등 두 경기 입장권 값으로 약 70만원을 대행업자에 지불했다”며 “표 정가는 25만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대행업자는 조씨에게서 40만원이 넘는 이득을 챙겼다. 그는 다른 한국인이 비슷한 정가의 입장권을 해외사이트에서 3만원이 되지 않는 수수료를 내고 구매했다는 얘기를 듣고 허탈해 했다.

40대 김모씨도 자신이 묵고 있는 한인민박을 통해 총 네 장을 구매 요청했는데 100만원이 넘는 돈을 냈다. 원래 정가는 4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31일 런던 시내에서 열린 불꽃축제 입장권도 구매대행에 부탁했는데 정가의 4배를 받았다”며 “아무리 한철 장사라 해도 너무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매대행 이용자 차모(22)씨는 “경기 관람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일정인 만큼 실수 없이 간편하게 입장권을 구하려고 현지의 한국인에게 구매대행을 요청했는데 입장권 정가를 보고 배신감이 들었다”며 “한국인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가능한 직접 구매하거나 번거롭더라도 영어에 능통한 지인에게 부탁해 예매하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런던(영국)=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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