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충무로는 인상적인 장면을 여럿 연출했다. 개봉연도 기준으로만 2편의 1,000만 영화(‘암살’과 ‘베테랑’)를 배출했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국제시장’까지 포함하면 3편이 3,500만명 가량을 극장으로 모았다. 사상 최대 관객을 기록했던 지난해 흥행 성적을 올해 또 뛰어넘었다는 소식이 당연하게만 들린다.
충무로 곳곳에서 샴페인이 터졌을 듯하나 현실은 아랫목보다 윗목에 가깝다. 부익부 빈익빈이 여전했다. 영화 수입사들 대부분에게 우울한 한 해였다. 연초 ‘위플래쉬’가 1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지난해 다양성영화의 초강세를 이어가는 듯했으나 흥행 행진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가 됐다. ‘비긴 어게인’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다양성영화 역대흥행 기록을 잇달아 깼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초라하기만 한 해였다.
독립영화계는 위기라는 형용이 실감나는 해였다. ‘소셜포비아’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강한 인상을 주었으나 두 영화가 독립영화라는 수식과 어울리는지 의문을 남겼다. 대형 멀티플렉스체인 CGV의 내부 조직인 CGV아트하우스의 투자배급으로 관객들과 만났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헛발 정책’은 독립영화계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2002년 시작된 다양성 영화관 지원 사업을 중단하고 위탁단체가 선정한 영화 48편 중 24편을 상영하는 상영관 중에서 일부에게만 지원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독립영화인들의 반발을 샀다. 영진위 입맛에 맞는 영화만 상영하는 다양성 영화관만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따를 독립영화인이 누가 있겠는가. 서울 소격동의 주요한 문화 풍경이었던 예술영화전용관 씨네코드 선재의 폐관도 서글픈 소식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갈등도 영화인들의 가슴을 어둡게 했다. 20회 영화제는 무사히 치렀으나 이용관 집행위원장 퇴진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올해 한국 영화계에는 산업은 있고 영화는 없었다. 최대 관객이라는 산업적 성과는 남겼으나 영화적 진보를 알리는 작품은 찾기 어렵다. 내년에는 수치만 따지는 영화계가 되지 않기를, 산업 아닌 영화의 의미도 되찾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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