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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 강조하더니 용역업체 배만 불린 파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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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 강조하더니 용역업체 배만 불린 파견제

입력
2017.05.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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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공식 수수료 15%선이고 20%까지 챙겨가, 부당 이익 챙기기도

비용 절감에 집중해 ‘질 나쁜 일자리’ 양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방과후 미술교사 A씨는 내년부터 파견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개인 강사로 활동할지 고민 중이다. 파견업체가 수업료는 물론 재료비에서도 20%의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겨 차라리 학교와 직접 계약을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생겨서다. 하지만 개인 강사로 근무 중인 학교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현재 소속된 업체와 맺은 ‘계약해지 후 1년간 계약기간 중 출강한 학교에 근무 금지’ 조항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고용의 효율성을 살리자는 명목으로 도입된 근로자파견제도가 파견ㆍ용역업체의 배만 불리며 저임금 근로자들을 양산하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돼 왔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파견ㆍ용역직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초 국회의 청소노동자 직접고용을 시작으로 최근 각 기업들이 파견직의 직접고용을 약속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민간 기업들을 중심으로 불법 파견도 널리 퍼져 있어 정확한 실태파악과 단속부터 선행돼야 하는 실정이다.

중간에 떼이는 돈… 파견ㆍ용역직들은 저임금 늪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파견ㆍ용역 방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89만7,000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644만4,000명)의 13.9%에 달한다. 파견은 원청업체의 업무 지시를 받고 용역은 지휘감독권이 용역회사에게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함께 분류된다.

파견ㆍ용역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노동 대가의 약 20% 가량이 파견ㆍ용역업체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파견업체가 공식적으로 떼 가는 수수료는 전체 인건비의 15% 수준이지만 일부 업체들은 여기다 더해 퇴직금, 4대 보험을 빼돌리거나 월급 통장을 대신 관리하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취하기도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청소 노동자를 민간위탁 방식으로 고용한 경기도, 부산시, 세종시 등을 분석한 결과 이 기관에서 근무한 노동자들은 지난해 손에 쥔 임금은 2,256만~2,350만원 가량이었다. 4대 보험이나 퇴직 충당금, 복리후생비, 피복비 등을 포함한 1인당 실제 노무비용은 2,842만~3,267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기관이 파견업체에 지급한 비용은 부가세를 포함해 1인당 3,302만~3,938만원에 이른다. 파견업체가 가져간 이윤과 부가세만으로도 16~21%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파견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는 경우 20% 가량 임금 상승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파견제로 이익을 본 것은 사용자, 노동자가 아닌 인력을 공급한 용역ㆍ파견업체들인 셈이다. 김종진 노사연 연구위원은 “올해 국회 청소용역을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1인당 평균 20만원의 처우개선이 가능했다”면서 “고용안정과 임금ㆍ처우 개선이 동시에 진행됐던 것은 기존 민간위탁 비용을 인건비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견ㆍ용역업체들은 급성장

이런 수익 체계를 등에 업고 파견ㆍ용역 시장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말 현재 파견 실적이 있는 업체는 1,718개로 이들 업체로부터 파견 근로자를 사용한 원청업체가 1만5,510곳에 달한다. 불법 업체를 감안하면 실제 파견ㆍ용역업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견법상 파견 대상 업무는 32개로 한정돼 있고 제조업은 이에 포함되지 않지만, 공장이 밀집된 안산ㆍ안양 등에는 불법 생산직 파견이 만연해 있다고 한다. 실제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은 지난해 무허가 파견 7건과 파견대상업무 위반 24건을 적발하기도 했다.

민간은 물론 공공성이 강한 학교조차도 파견직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최근 각급 학교들이 방과후학교를 민간위탁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방과후 교사들은 파견업체로 소속을 바꾼 채 같은 학교에서 근무를 지속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내 학교 중 올해 방과후학교를 전체위탁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은 213개교로 전체의 35.4%에 이른다.

하지만 수수료율에 제한이 있다 보니, 파견업체들은 수익을 늘리기 위한 꼼수를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술이나 요리, 과학, 로봇 등 별도의 교구가 필요한 경우에는 업체가 교구를 독점하는 식이다. 강사들이 계약을 해지하고 개인 강사로 활동하려 해도 ‘계약 해지 시 위약금 부과’ 등의 독소 조항을 포함해 원천 봉쇄하고 있기도 하다.

파견직이 겪는 가장 큰 문제에 대해 전경진 전남비정규직노동센터 노무사는 “일상적 차별”이라고 말한다. 그는 “용역업체가 관리비 명목으로 임금을 깎거나 단가 후려치기를 하고, 원청업체 정규직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복리후생비(명절상여금, 휴가지원금 등) 등에서 차별적 대우를 몸소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또 안전 문제에서도 “산업재해를 신청할 때 원청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고 고용이 된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긴다”며 “하청업체 측은 노무관리가 엉망인 점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산재 신청서에 서명조차 잘 안 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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